[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배우 이석준이다. 20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의 연기력는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쌓아올린 역할을 부수고 새로움을 찾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그를 '트릴로지 장인' 더 나아가 '연기 장인'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국의 제스로 컴튼의 연출작 '카포네 트릴로지'에 이어 '벙커 트릴로지'(연출 김태형, 작가 지이선)에 출연한 이석준이 맡은 역할은 솔져1이다. '모르가나'에서는 랜슬롯, '아가멤논'에서는 알베르트, '맥베스'에서는 밴이다. 1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각 에피소드에서 그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갈등을 일으키거나, 조장하거나, 그에 대한 끝맺음을 낸다. 한 무대에 4명의 배우가 오르는 가운데, 그는 어디에 서 있어도 시선을 끈다. 대사 없이 구석에 앉아있기만 해도 '저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겨 저절로 눈이가고, 그가 땀을 흘리며 대사를 하면 그 땀방울의 의미를 찾게된다.
그의 연기력은 좁은 공간인 벙커에서 더 빛을 발한다. 전쟁터라는 낯선 인위성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관객을 단숨에 극안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련함과 압도적 존재감은 극을 사실상 이끌어가며 완급 조절을 지배한다. 벙커 속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전쟁이라는 소재에 군인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총을 소지한 배우들까지, 거기에 가까운 거리까지 한 몫 거들며 불안한 공기를 조성한다. 이석준은 그 팽팽함을 자연스러움으로 누그러뜨린다. 소품인 빵을 먹고, 우물거리며 대사를 친다. 진짜 동생에게 혹은 친구에게 말하듯 상대 배우에게 짜증을 내고, 말을 건넨다. 그것만으로도 관객은 눈둘 곳을 찾고 점차 극에 빠져든다.
'아가멤논'의 알베르트 역은 이석준의 폭발적인 연기력을 가장 잘 드러낸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태어날 아기까지도 뒤로한 채 나라를 위해 전장으로 뛰어든 남자. 살아남기 위해 쏜 총알들은 그를 단숨에 훌륭한 저격수로 만들었고, 알베르트는 점차 아군 신병의 목숨까지 미끼로 활용하며 자신의 업적을 쌓는 인간미 잃은 군인이 되어간다.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는 극의 특성상, 그는 냉혹한 이미지를 보였다가 웃는 얼굴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군인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낯설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극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게감으로 중심을 잡은 이석준은 죽는 순간까지, 아니 죽은 후까지 탁월한 표정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 눈물샘을 자극한다.
함께 출연하고 있는 남자 배우들에게 이석준은 단연 인기 스타다. 배우 박훈, 오종혁, 신성민, 임철수는 인터뷰에서 그의 이름을 빼먹지 않고 언급한다. 듣다보면 이석준이 이들에게 신(神)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석준과 함께 더블 캐스팅으로 솔져1을 연기하는 박훈은 "이석준 형이랑 처음 만난 건 '형제는 용감했다' 작품에서다. 형은 주연 배우였고, 나는 앙상블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블로 연기를 한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항상 큰 에너지로 감싸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뭘 하든 웃어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이석준과 한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뮤지컬 '킬미나우' 당시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방황하던 오종혁(솔져2 역)을 잡아준 것은 이석준이었다. "형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고 고백한 오종혁은 이석준을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꼽으며 "감히 닮고 싶은 배우다. 내가 저 나이때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형처럼 연기로 누구에게나 믿음을 주고 싶다"며 존경심을 전했다.
늦은 시간까지 항상 연습에 참여해준 이석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신성민(솔져 2역)은 "연출가가 그려준 상황 말고 배우가 직접 극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잘 잡아주셨다. 화술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나였는데 형이 끄집어내주셨다"면서 "작품이 끝나면 얻는 것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석준과 함께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서 부러움을 산다는 임철수(솔져3 역)는 "이석준 형은 무대 위나 밖에서나 정말 멋진 사람"이라 말하며 그를 '멘토'라 언급했다.
이석준을 향한 박수는 높은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변하려는 정신,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서 노력하는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어느새 많은 후배들의 닮고 싶은 배우로 자리매김하며 관객들 사이에서도 '믿고 보는 배우'로 등극한 그는, 무대 아래서도 팬들과 툭툭 농담을 던질 수 있는 누구에게나 호감가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TV 드라마에서 발견하는 그도 반갑지만, 이석준의 살아있는 연기를 만날 수 있는 무대 위 모습은 그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2017년에도 다양한 모습의 이석준을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사진 제공=아이엠컬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