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기억될 때, 그것은 비로소 역사가 된다.
많은 전쟁고아들과 이산가족을 만들어낸 동족상잔의 비극. 역사가 기록하고 기억하는 6.25전쟁의 참상이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역사들이 존재했다. 기술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 개인의 역사들과 숨기고 은폐된 역사들. 전쟁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화 속으로 잠재웠다. 그리고 휴전협정이 맺어졌고, 남과 북은 서로에게 장벽을 세웠다. 전쟁은 그러고도 65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어졌다. 그 시간동안 수많은 역사들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북이 벌이고 잊어버린 전쟁의 역사를 기억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폴란드’였다.
이야기는 폴란드 공동묘지 한 귀퉁이에 있던 13세 북한소녀 김귀덕의 묘지에서부터 시작됐다. 폴란드의 언론인인 욜란타 크르소바타와 패트릭 요카는 어쩌다 이 소녀가 머나먼 타국의 땅에서 잠 들었는 지에 대한 기록을 추적해나갔고, 이 모든 과정은 폴란드 국영 방송의 다큐멘터리 ‘Kim Ki Dok(김귀덕)’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타국의 땅에서 기록한 한국 역사의 비극적 이야기는 한국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없었다. 배우 추상미는 감독으로써 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기억과 역사를 다시금 스크린 속으로 옮기는 여정을 떠났다. 탈북소녀 ‘이송’과 함께였다.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추상미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왜 이 이야기를 지금의 시점에서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시작된다.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극영화 ‘그루터기’로 제작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기록을 뒤쫓기 시작한 추상미 감독은 오디션 장에서 만난 배우 이송에 주목했다.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소녀. 6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어져온 동족상잔의 비극을 여실히 안고 있는 소녀 이송의 이야기와 함께 추상미 감독은 계속해 ‘왜’를 설정해 나간다. ‘왜’가 있으니 ‘어떻게’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
폴란드로 떠난 추상미 감독은 이송과 함께 ‘왜’ 전쟁고아들이 폴란드로 보내졌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이들이 폴란드로 오게 됐는지에 대해 추적한다. 그러면서 ‘왜’ 폴란드 보육교사들이 전쟁고아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보살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세밀해지고 더욱 광범위해진다. 당연히 감정의 폭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추상미 감독은 인류가 끝없이 반복해왔던 비극들을 여전히 끝나지 않은 비극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에 대입하기 시작한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두 나라를 가르고 있는 경계에 대해서 말이다.
질문이 광범위해질수록 이야기는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내용들을 담지는 못한다. 추적의 과정을 깔끔하게 이어가지 못한 것에서 미완의 찝찝함이 가슴 속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다룬 이야기가 지금의 현시점에서 해야 할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에는 반문할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이 남겼다고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남과 북의 문제가 다시금 대두되고 있는 과정에서 전쟁이 만들어낸 이 비극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것처럼 중요한 문제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매끄럽지 못한 서사, 반복되는 질문, 메시지를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는 아쉬움 등의 많은 티들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의성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하나의 사실이 기억되고 기록될 때, 그것은 비로소 역사가 된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한반도에서 역사가 되지 못했던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가져오면서 새로이 역사를 써내려가고자 한다. 이러한 사실이 한국이 아닌 폴란드에서 가장 먼저 알려졌다는 씁쓸함 또한 그렇게 역사가 된다.
영화와 관련된 취재 후 “아마도 고향은 어떠한 지역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기억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추상미 감독. 전쟁이란 비극 속에서 한반도에 꽃피우지 못한 사랑이 머나먼 타국 폴란드에 피어났다. 왜 아무도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을까.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나지막하게 자신만의 답을 던진다. 과연 이 답이 많은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피어날 수 있을까.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오는 31일 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