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다.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감추는 게 다 드러내는 것보다 매력적인 법이다. 적어도 김지운 감독표 스파이물 '밀정'은 그렇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 그림)은 1920년대 말, 일제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다.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 송강호,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 역 공유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이 출연하며 이병헌, 박희순이 특별출연에 나섰다.
'밀정'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물이다. 그런데 김지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19금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밀정'을 고품격 에로틱 서스펜스 스파이 스릴러라고 표현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 했던 건 당연지사.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헤럴드POP에 "요즘 신세대들은 밀정이란 말을 모른다. 더욱이 우리 영화 포스터에서는 '밀정'이란 말을 흘려서 썼다. 그걸 '발정'이나 '밀당'으로 보고 은밀히 정을 통하는 이야기로 오해하기도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극 중 김우진과 이정출, 그리고 정채산이 뭔가 은밀히 작업하지 않느냐. 또 스파이는 섹시한 존재다. 자신을 감춰야 하는 존재이니까. 다 드러내는 것보단 감췄을 때 섹시하더라"라며 갑작스러운 장르 변환(?)의 전말을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밀정'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의뭉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영화다. 잘 차려입은 스파이들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차가운 금속성의 외피 속에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뜨거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절정은 단연 영화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기차 신이다.
"기차신 시퀀스를 전후로 영화에 담긴 감정이나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진다. 세계관과 인물의 상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들은 이런 식의 전개에 대해 '밋밋하거나 지루하다'라고 느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촘촘한 미장센으로 시대의 광풍에 휘말린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관객이 '밀정'을 처연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밀정'은 '악마를 보았다'(2010) 이후 김지운 감독의 6년 만의 한국영화다. 그간 그는 '라스트 스탠드'(2012) 등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에서 작업해왔다. 김지운 감독은 "오랜만에 현장에서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게 편했다. '내 말을 알아듣네?' 싶더라. 꿈만 같았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스럽게도 '밀정'은 개봉 11일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시작이 순조로워서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항간에는 김지운 감독이 흥행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영화감독치고 작품의 성적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누적 관객 수를 신경 쓴다. 하지만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의 1차 목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거다. 단지 그 이상을 넘어가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가지 욕심이 있긴 하다.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보답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흥행이 욕심나긴 한다. 그들은 현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자기 재능을 헌신한 사람들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