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한국형 판타지는 해리포터 아성을 넘을 수 있을까. '가려진 시간'이 '신비한 동물사전'과 맞붙는다.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이 16일 개봉했다.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세계와 우리가 사는 현실이 공존한다는 설정이다. 불의의 사고로 시간 속에 갇힌 성민과 그를 믿고 기다리는 수린, 이들은 우정과 첫사랑의 감정 사이를 오간다.
이 작품의 메가폰은 엄태화 감독이 잡았다. '잉투기'(2013)로 호평받은 구 충무로 유망주다. 흥미로운 소재와 재기발랄한 이야기로 이미 상당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앞서 '숲'(2012)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을 거머쥐기도. '가려진 시간'은 그의 상업영화 입봉작이다. 의지할 곳 없는 소년과 소녀가 소울메이트가 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는 이야기다.
전작에서 영상미에 강점을 보였던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에서도 특기를 발휘했다.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노련하게 구사한다. 시간이 멈춘 섬마을에는 중력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일시정지한 사람과 사물들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다.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구축된 가상세계는 현실과 만나 뒤섞인다. 마치 잔혹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승전결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지는 볼거리다. 판타지 장르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강동원이란 배우의 활용법이다.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에서 소녀와 어른 남성의 시공간을 초월한 우정과 첫사랑의 감정을 그린다. 자칫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어른과 소년의 경계에 선 외모를 가진 강동원이란 배우는 그 우려를 희석시킨다. 신비로운 이미지의 그는 관객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캐스팅이다. 공교롭게도 '가려진 시간'의 최대 라이벌 역시 판타지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 '신비한 동물사전'(배급 워너브러스 코리아) 역시 16일 개봉했다. 마법 동물학자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가 신비한 동물을 찾아 떠난 1926년 뉴욕에서의 모험이 소재다. 특히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이 이 영화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신비한 동물사전'으로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이쯤 되면 상상력의 대결이다. '가려진 시간'과 '신비한 동물사전'은 판타지이지만 노선이 엄연히 다르다. '가려진 시간'은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소년과 소녀에 대한 감성적 접근과, 이들이 나누는 믿음이란 감정에 무게를 뒀다. 반면 '신비한 동물 사전'의 경우 뉴트 스캐맨더의 활극이 중심이다.
판타지 대 판타지라는 이색 빅 매치. 당사자인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의 심경(?)은 어떨까. 난생 처음 흥행 시험대에 오른 그는 막강한 적수를 만났다. '가려진 시간' 역시 이야기와 소재의 힘이 남다르다는 평을 얻고 있지만, '신비한 동물사전'이 유력한 경쟁상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터. 최근 헤럴드POP과의 인터뷰에서 엄태화 감독은 "각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81년생인 엄태화 감독은 엄연히 말하자면 '해리포터'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특히 재미있게 보았다고. 그는 "사실 나도 (경쟁작 주연 배우)에디 레드메인의 팬이다"라며 두 작품이 모두 선전하길 바란다는 뜻을 강조했다.
감성에 밀착한 섬세한 연출이냐 가슴 뛰는 모험담이냐. 상반된 매력의 판타지물이 같은 날 관객을 찾으면서 영화팬들 역시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됐다. 한국형 판타지 '가려진 시간'과 마법 판타지 '신비한 동물 사전', 상상력의 결실은 누구의 손에 쥐어질까. 두 편의 맞대결 결과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