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배우 김재욱과 서예지가 세상의 끝에 선 남녀로 관객을 찾는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설원 위 두 남녀의 멜로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다른 길이 있다' (감독 조창호/배급 영화사 몸, 무브먼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한 두 남녀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 영화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경찰 수완(김재욱)과 이벤트 도우미 정원(서예지)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어릴 때 목격한 엄마의 죽음이란 트라우마를 안고 자란 수완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느라 남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남자다. 게다가 정신병원에 가짜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생활은 늘 빠듯하다. 이 와중에 마음 약한 그는 음주단속에 걸린 남자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남자는 이를 악의로 갚는다.
결국 세상의 부조리에 지친 수완은 죽음을 택하기로 한다. 그는 채팅으로 닉네임이 흰새인 여자를 만나 삶의 끝을 모의한다. 흰새의 정체는 정원이다. 정원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전신마비인 엄마를 간호하는 이중생활 중이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고단한 일상뿐만이 아니다. 그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수완과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수완과 정원의 시선을 번갈아 가면서 이들의 일상을 비춘다. 극 전반에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심란한 풍경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침묵과 고요, 정적 속 긴장감은 고조된다. 사는 게 지옥이라 말하는 수완과 정원. 서로 닮은 두 남녀의 연결고리는 그런 동질의식이다.
'다른 길이 있다'는 여러모로 미덕이 많은 작품이다. 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새하얀 풍광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형벌인 남녀의 여정은 춘천의 설원과 빙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비극을 위한 무대라기엔 역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배우 활용법이다. 친근함보단 화려함이 앞섰던 김재욱과 서예지에게 일상성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날카롭고 세련된 이미지였던 김재욱은 삶의 고단함도 그릴 줄 아는 배우였다. 서예지는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 자체가 고통인 정원을 입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의 피로감과 절박함이 그들의 얼굴에서 보인다.
이는 조창호 감독의 연출 덕분이기도 하다. 대사보다는 동선과 분위기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섬세함은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이끌어내는 건 배우의 특권이자 의무다. 김재욱과 서예지의 변신이 '다른 길이 있다'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인 이유다. 극과 극은 통하고, 모든 길의 끝에는 다른 길이 있다는데. 그렇다면 서로 다른 길에 있던, 나와 같은 당신을 만난 남녀의 끝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