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맑은 스토리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해낸 초절정의 무대."
참 좋은 뮤지컬이다. 자극적인 요소없이 공감도 높은 소재로 따뜻한 우정을 담아낸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Story of My Life)'의 이야기다. 단 두명의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우는 이 작품을 설명하는데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수식어가 필요없다. 주인공 앨빈 켈비와 토마스 위버의 이야기가 그랬듯이 말이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연출 신춘수)는 2006년 캐나다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국내 첫 무대는 2010년에 시작됐다. 그 후, 2011년 재연과 2015년 삼연을 거쳐 2016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출연진에도 반가운 얼굴과 새로운 얼굴이 함께한다. 슬럼프에 빠져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위버 역에는 2015년 같은 무대에 섰던 배우 고영빈, 강필석, 조성윤에 새 얼굴 김다현이 합류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철부지 소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토마스의 30년지기 친구 앨빈 켈비 역은 배우 김종구, 홍우진과 더불어 원년 멤버인 이창용이 연기한다.
극은 앨빈의 장례식 장으로 향하는 토마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어릴 적 두 사람은 누군가 먼저 죽으면 상대방의 송덕문(頌德文)을 써주기로 약속한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토마스는 앨빈의 장례식 장에서 낭독할 송덕문을 작성하며 고뇌에 빠진다. 한참 인상을 구기며 몇 장의 종이를 낭비한 토마스의 옆에 앨빈이 나타나 그의 글쓰기를 돕는다.
토마스와 앨빈이 만난 것은 초등학교 할로윈데이다. 영화 '멋진인생(It's a wonderful life)' 천사 클레란스 복장을 입은 토마스와 죽은 엄마의 가운을 걸치고 나타낸 앨빈. 다른 친구들과는 차별화 된 할로윈 의상을 선택한 두 사람의 인연은 앨빈의 엄마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인물이 천사 클레란스였던 것을 이유로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 토마스는 앨빈과 함께 선생님의 장례식에 몰래 숨어들기도 하고, 앨빈 아버지의 책방에서 모험을 즐기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은 30년 동안 이어진다. 세월이 흘러 성장을 거듭하며 점점 평범하게 순수함을 잃어가면서 친구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중시하게 된 토마스는, 고등학교 시절 성인 잡지 보다 나비의 움직임에 관심있는 앨빈에게 '보편적인 평범함'을 조언한다. 하지만 앨빈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한 채 약간은 엉뚱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친구 토마스에 대한 애정 또한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가 쓴 책들의 내용은 앨빈의 말에서 소재를 얻어 쓰게 된 것이다. 사실 토마스는 대학 원서를 쓸 때부터 앨빈의 도움을 받아왔다. 토마스에게 앨빈은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 앨빈은 토마스에게 언제나 말한다 "이미 네 머릿속엔 수천 가지 이야기가 있어. 아는 대로 써봐." 이 한 마디는 토마스의 기억의 서재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앨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앨빈은 절친한 친구인 토마스에게 송덕문을 부탁한다. 토마스는 유명한 시인 존돈(John Donne)의 시의 일부를 인용해 송덕문을 작성했고, 앨빈은 이에 실망하며 자신이 직접 준비되지 않은 송덕문을 즉석에서 발표한다. 앨빈이 토마스에게 강조하는 "이미 네 머릿속엔 수천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완성되기 위한 바탕이다. 다른 이의 말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토마스의 기억과 추억에서 시작된 앨빈과의 이야기 혹은 그 자신의 이야기가 앨빈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기리는 것이자 서로의 존재 가치를 돌아보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명성이 생기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옆에 생기자, 도시 생활을 하던 토마스는 앨빈의 연락에 점점 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우정이 30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외면하는 토마스에게 지치지 않고 노크하던 앨빈의 노력이 바탕이 됐다. 토마스 또한 앨빈이 주는 익숙함에 그 냉혹한 세상 어딘가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현실과 환상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구성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미학을 한층 극대화 시켰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앨빈이 환상이 되어 나타나고, 과거로 시점을 옮겨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가운데 회상 속 보여지는 이야기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세월의 흐름을 담아낸 무대는 아련한 기억과 추억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극을 몰입도를 높인다.
토마스와 앨빈,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 흔한 '브로맨스'의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쌓인 눈 위에 누워 날개짓으로 쌍둥이 천사를 만들어 낸 순수한 우정부터 시골과 도시라는 물리적 거리감과 더불어 생겨버린 마음의 거리까지. 단지 그들 캐릭터의 성별이 남자였을 뿐, 어떤 친구의 형태라도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였기에 마음에 와 닿는 감동은 더욱 진하다.
감성 한가득 담긴 무대 또한 시각적 감동을 선사한다. 토마스 머릿 속 기억의 서재를 메인 배경으로 구현한 무대는 비탈길과 굴곡 등으로 살짝 질서를 어긴 모양새로 현실감을 줄이며 판타지를 자극한다. 서재에 놓인 책과 수많은 종이는 토마스의 기억, 앨빈의 기억, 토마스와 앨빈의 기억으로 구체화 된다. 낱장으로 기록된 종이들이 모여 기억이 되었고, 그것을 소중히 쌓아놓은 서재에 발을 들여놓은 앨빈은 기억을 헤집으며 옛 추억을 상기시킨다.
'종이'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하는 역할은 크다.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실체화 하는 것을 비롯해, 토마스와 앨빈은 종이에 글을 쓰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불어 이 작품의 명장면 중 하나로 뽑히는 눈싸움 신에서는 눈(雪)으로 변신, 배우와 관객 모두를 웃음 짓게한다. 특히 극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요소인 하늘에서 내려오는 작고 하얀 종이 조각들은, 기억을 담은 매개체이자 맑고 순수함을 드러내는 백색의 눈으로 흩날리며 토마스와 앨빈의 우정을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한다.
고영빈, 강필석, 조성윤, 김다현, 김종구, 홍우진, 이창용, 7명의 배우들은 각각 페어를 이루며 무대마다 색깔이 다른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다시 돌아온 원년 멤버 이창용(앨빈 역)은 노련미와 특유의 발랄함으로 전보다 파워업된 모습을 보이며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활약한다. 앞서 뮤지컬 '곤 투모로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에서 무겁고, 아련한 역할을 맡았던 강필석(토마스 역)의 변신도 주목할만 하다. 첫 등장에서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잘 써지지 않은 송덕문으로 짜증 가득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비글미 넘치는 앨빈과 함께하며 귀여운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강필석의 11살 소년 연기는 깜짝 놀랄만큼 사랑스럽고, 이창용과 함께 한 무대에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이창용의 장난에 "어려워~"라고 투정하며 극과 극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네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가 네 인생과 연결되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오는 2월 5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사진 제공=오디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