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부조리함을 바꾸는 변화는 이에 맞서는 최초의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차별이 난무하던 시대에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갔던 용기 있는 여자들이 온다. 실화를 담은 '히든 피겨스'다.
영화 '히든 피겨스'(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3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1960년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NASA 프로젝트의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NASA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타라지 P.헨슨),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이다. 이들이 미국 최초 유인 위성 프렌드십 7호(1962)를 쏘아올리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천재다. 수학 영재인 캐서린은 학생 때부터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세상은 온통 소수와 수학공식, 도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천부적인 수학 재능으로 NASA에서 '인간 계산기'로 불리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천재성은 피부색과 성별에 가로막혔다.
도로시 본은 여섯 남매 육아와 고된 업무를 병행하다가 NASA에 최초로 도입된 전자 컴퓨터 IBM을 마주한다. 미래에는 전자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할 것임을 내다본 그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독학하지만, 백인이 아니란 이유로 관련 서적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메리 잭슨은 엔지니어링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여성이다. 그는 이를 인정받아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의 엔지니어 팀 임시직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백인 전용 고등학교에서만 딸 수 있는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난관에 부딪힌다.
'히든 피겨스' 세 주인공은 사회적 소수자이자 약자이다. 충분한 재능과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흑인이자 여자란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 1960년대 미국을 살아가던 흑인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일하는 공간과 화장실. 도서관부터 커피 포트까지 유색 인종은 백인들과 철저히 격리당했다. 이는 최첨단 과학의 중심부였던 NASA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린 백인이 아니야. 그러니 안돼"란 자포자기는 흑인들 사이에서도 만연해있던 시대다.
하지만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굴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불평등한 현실 타파에 나선다. 그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백인과 남자만이 지구를 돌고 달에 가는 꿈을 꾸란 법은 없으니까. 천재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엔 한계가 없다는 홍보 카피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자체다. '히든 피겨스'는 이 보편적인 가치를 유머를 섞어 아주 사랑스럽고 강렬하게 전한다.
사실 '히든 피겨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평등을 향한 일갈이다. 단지 주인공들이 흑인 여성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척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의식은 아주 보편적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실현되기 어려운 명제이기도 하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날릴 강력한 한 방의 탄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