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황수연 기자]1957년 영화 '황혼열차' 속 다섯 살 귀여운 꼬마 아이가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데뷔 60주년을 맞이했다. 벌써 60년, 여전히 그는 현역이다.
배우 안성기가 데뷔 60주년을 맞아 1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을 개최한다. 지난 60년 동안 출연했던 약 130편의 작품 중에서 엄선한 27편을 선보인다.
안성기의 배우 인생은 아버지로 인해 시작됐다. 前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으로 체육교사를 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친구 김기영 감독의 권유로 영화 제작자로 전직했고, 이후 김기영 감독은 배우 김지미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영화 '황혼열차'(1957)를 만드는 중에 친구 아들인 안성기를 아역으로 캐스팅했다.
꽤 연기를 잘했었나 보다. 이후 꼬마 안성기는 '마성의 미학'으로 불리는 김기영 감독의 초기 작품인 '초설'(1958), '10대의 반항'(1959), '하녀'(1960) 등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아역 배우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68년 '젊은 느티나무'를 끝으로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까지 약 10년간 공백기를 가진다.
그 기간 안성기는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했고,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안성기가 배우를 다시 시작할 6,70년대는 아역 출신이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복귀 3년 후인 지난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흥행에 성공하며 그해 제19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는 안성기의 전성시대였다. 임권택 감독과 함께한 '만다라'(1981)로 1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최우수남자연기상을 받았고, 배창호 감독의 '철인들'(1982)로 신인상을 받은 지 2년 만에 제21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안성기는 거장 임권택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며 다수의 작품을 함께했다.
이날 안성기는 가장 소중하게 느끼는 작품으로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이창호 감독), '만다라'(1981, 임권택 감독), '고래사냥'(1984, 배창호 감독), '하얀 전쟁'(1992, 정지영 감독), '투캅스'(1993, 강우석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명세 감독), '실미도'(2003, 강우석 감독), '라디오 스타'(2006, 이준익 감독)를 꼽았다.
안성기는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이 선택한 첫 작품 '바람불어 좋은 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 영화 '만다라', 80년 대 안성기를 있게 한 배창호 감독과의 작품 '고래사냥',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담은 '하얀전쟁', 주연에서 조연의 변화를 겪으며 비중은 작아도 존재감 있는 역할을 하자고 마음먹었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첫 천만 영화 '실미도', 캐릭터와 영화 색깔이 마음에 들었던 따뜻한 '라디오 스타'라며 의미 있는 8편의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안성기가 영화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60년을 맞이한 건 영화만을 사랑했던 외길 배우 인생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아역시절 10년의 공백을 제외하고 1년에 1작품 이상에 출연하며 오로지 배우의 길을 걸었다. 특히 한국 영화가 침체기를 맞고 TV 브라운관에 배우들이 몰렸던 시기에도 그는 홀로 스크린에 남아 영화를 지켰다. 이날 스크린쿼터제에 앞장선 이유도 "영화를 위해서 우리의 표현을 위해서 사명감이 있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안성기는 지난 1991년부터 26년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세계 어린이를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며 사회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안성기에겐 흑역사가 없고, 오로지 배울 점만 있다고 하겠는가. 국민배 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