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폭력의 씨앗’은 외박을 나온 주용(이가섭 분)이 하루 동안 겪는 사건을 통해 폭력이 인간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 2017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단편 영화 ‘노말’로 모로디스트 키예프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임태규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폭력이라는 주제는 익숙하다. 하지만 ‘폭력의 씨앗’은 익숙한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한 신선하고, 더욱 날선 시선을 드러낸다. 영화는 군대 선임, 후임과 함께 외박을 나오는 주용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쭉 주용을 따라다니며 그의 하루를 담아낸다. 영화를 이끄는 주된 사건의 중심은 선임들의 폭행을 누가 고발했는가에 대한 추궁이다.
선임들은 그 주된 용의자로 이미 한 번의 이력이 있는 이병 신필립(정재윤 분)을 의심한다. 하지만 필립은 죽어도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렇게 선임의 폭력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선임은 일병인 주용에게 필립을 때리라고 지시하기까지. 폭력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 후 누나를 찾아가게 되는 주용 앞에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매형이 누나를 향해 행하는 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주용의 주변에서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용.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폭력의 모습은 적나라하다. 또한 4:3비율의 화면비와 핸드 헬드로 계속해서 주용의 모습을 따라가는 화면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용의 답답한 내면을 그대로 표현해낸다.
‘폭력의 씨앗’의 이런 표현은 단 한 번도 배경음악이 등장하지 않기에 더욱 부각된다. 오로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화, 배경소리로만 채워지는 사운드 속에서 이들이 행하는 폭력의 소리에는 숨겨짐이 없다. 또한 배경음악이 없기에 인물 사이의 감정은 오롯이 그들이 내는 소리와 그 사이의 적막으로 표현된다. 그렇기에 적막 사이 존재하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는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기도.
영화는 이렇게 관객들을 82분의 러닝타임동안 주용의 상황에 함께 처해진듯하게 만든다. 주용처럼, 아니 더 나아가 주용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되어 놓이게 된 상황에서 자연스레 관객들은 극의 상황에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킨다. 서사는 이때부터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객의 주변으로 산재되며, 영화가 끝이 나더라도 영화가 주던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이런 극 상황에 더욱 몰입시키게 만드는 요소 중에는 주연 이가섭과 정재윤이 펼치는 연기가 가지는 몫 또한 크다. 이가섭과 정재윤은 인물 감정의 폭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표현해내며 날카롭게 감정의 날을 세우고 반응한다. 이 예민함은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더욱 넓히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나 이가섭은 흔들리는 내면의 인물이 풍기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그대로 내재시키며, 그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위태로움을 읽어낼 수 있게 만든다.
그간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대개 폭력이 어디서 오고, 그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는 가에 대해 말했다면, ‘폭력의 씨앗’은 그 시선을 돌려 인간 내면의 잠재된 폭력의 씨앗이 어떻게 발아되고 자라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잔인한 폭력들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섬뜩해 했던 반면, 군대 폭력이나 가정 폭력과 같이 주변에 있는 폭력에는 무딘 반응을 보이는 대중들을 바라보며 일상에서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 임태규 감독.
임태규 감독이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처럼 날카롭게 다가와 무뎌진 시선을 도려내고 예민한 감각을 살려낸다. 오는 11월 2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