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지혜 기자] 최태성이 핵폭탄의 비밀에 대해 파헤쳤다.
6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역사 강사 최태성이 진주만 공습과 미국의 핵폭탄에 대해 강의했다. 게스트로는 타일러와 동아시아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 서민교 교수가 함께 했다.
역사 강사 최태성 등장에 이혜성은 학창 시절 최태성의 강의를 들었다며 "같이 방송을 하게되니 너무 신기하다"고 반가움을 표했다. 이날 최태성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핵폭탄의 개발을 위한 첫 본부가 바로 뉴역의 브로드웨이에 세워졌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히틀러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이 유럽과 미국에 퍼지기 시작하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루스벨트는 우수한 과학자들을 모두 모아 핵폭탄을 개발하게 주도했다. 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은 히틀러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는 것.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부통령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다. 이후 본부를 맨해튼에서 시골마을 오크리지로 옮겨 미국 전역의 30개 단지에서 연구가 이어졌다. 참여자들은 보안을 위해 가명과 코드명을 사용할 만큼 비밀리에 수행된 프로젝트였다.
이후 핵폭탄 개발 성공에 성공한 미국은 위력을 확인하기 위한 핵무기 실험 트리니티 테스트를 1945년 7월 16일 단행, 핵무기의 파괴력을 깨닫게 됐다고.
그런가 하면 트리니티 테스트 4년 전,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은 일본의 침공을 받은 상태였다. 일본은 당시 태평양에서 세력을 확장 중이었던 터라 이를 저지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석유를 포함한 모든 수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일본이 획득해온 모든 영토를 포기하라고 내걸었다.
군사적, 경제적으로도 마비가 되자 결국 일본은 동남아 지역 유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태평양을 꽉 잡고 있던 미국에 대한 선제 타격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를 위해 진주만 공습을 펼친 것. 이후 일본은 침공을 거쳐 유전을 성공적으로 차지한 반면, 미국은 하와이 해군 세력이 괴멸돼 위기를 맞았다.
일본은 기세등등해져 미국 공격을 한번 더 감행하기로 했다. 다음 타깃은 미드웨이로, 특히 일본은 진주만 공습 때 살아남았던 미국의 항공모함을 전부 끝장내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오히려 역습을 당하고 일본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상실, 태평양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겨 태평양 전쟁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일본은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까지 동원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미국은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고 이때 가장 무자비한 살상무기 '리틀보이'까지 등장했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된 후 그럼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3일 만에 또다른 핵폭탄 '팻맨'을 나가사키해 투하했다. 이로 인해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일본은 결국 항복했다.
핵폭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는 일본이지만 두 번째 피해국은 바로 한국이었다. 최태성은 "한국이 핵폭탄 피해국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시더라. '일본에 떨어진 거지 우리랑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두 번의 핵폭탄 투하로 인해 당시 한국인 사망자 약 4만 명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7만 명에 달한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태성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워낙 많이 있었다. 이뿐 아니라 정리나 재건을 위한 사후처리에 조선인들이 동원됐다. 보호장비 없이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피폭자 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종전이 되고 한국은 광복의 기쁨을 맞기도 잠시, 미국은 소련에 38도선을 그어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자고 제안하면서 또 한번 우리 민족은 시련을 맞았다는 내용이 소개되며 패널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