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노윤정 기자] 분명히 악역인데 마음이 쓰인다. 욕을 하다가도 이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동정심이 들고 안쓰럽고 토닥여주고 싶기까지 하다. ‘가화만사성’에서 모자(母子)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서이숙과 이필모의 이야기다.
지난 26일 방송된 MBC ‘가화만사성’(연출 이동윤, 강인/극본 조은정) 36회에서는 장경옥(서이숙 분)이 아들 유현기(이필모 분)의 병을 알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장경옥은 갑자기 회사도 그만 두고 이혼한 봉해령(김소연 분)의 곁을 맴도는 유현기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유현기는 장경옥의 냉랭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살갑게 굴었다. 어머니 밥이 먹고 싶다고 말하지를 않나, 장경옥이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자 직접 라면을 끓여 장경옥에게도 함께 먹길 권했다. 심지어는 같이 여행가자는 말까지 했다. 장경옥은 아들의 생소한 모습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미심쩍어 했다.
심지어 의사인 유현기 친구가 계속해서 유현기를 급하게 찾는 점, 유현기가 납골당에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는 점 등이 장경옥의 의구심을 키웠다.
유현기는 어떻게든 숨기려 했으나 결국 장경옥은 아들의 병을 알게 됐다. 유현기가 걱정돼 기어이 집으로 찾아온 의사 친구와 유현기의 대화를 듣게 된 것. 장경옥은 그제야 아들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유현기가 예약했다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손자 서진의 자리 바로 옆에 아들이 자신의 죽을 자리를 마련해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장경옥은 오열했다.
장경옥은 그동안 자신의 일과 자기 자식이 가장 귀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일이 더 우선이라 자식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아들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유현기와 봉해령이 헤어진 뒤에도 봉해령의 머리채를 잡고 자신의 아들 인생을 망친 게 봉해령이라고 원망했던 독하고 모진 시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역시 결국 ‘부모’였다. 아들이 곧 세상을 떠난다는 말에 장경옥은 그동안 못 해준 것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아들의 뺨을 쳤던 손을 바닥에 내리치며 통곡했다. 그동안은 동정의 여지없이 ‘얼른 벌 받고 후회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시청자들 역시 온몸으로 자식을 잃는 슬픔을 표현한 서이숙의 열연에 함께 울었다.
이필모의 열연 역시 유현기라는 인물의 불행에 시청자들을 깊이 감정이입하게 만들고 있다. 유현기는 자식이 죽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아내 봉해령과 서로를 보듬어야 하는 그 시기에 다른 사람과 바람을 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하지만 아내와 헤어진 뒤 후회하는 모습,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을 봐주지 않는 전처 봉해령 곁을 맴도는 모습으로 애잔함을 자아냈다. 심지어 봉해령과 유현기의 재결합을 원하는 시청자 반응이 많아졌을 정도. 봐주지 않아도 봉해령 곁에만 있어도 좋으냐고 묻는 봉삼봉(김영철 분)에게 “네. 좋아요, 아버님”라고 답하는 모습은 먹먹함까지 자아냈다. 여기에는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에서 눈에 슬픔과 후회를 가득 담은 캐릭터 변화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이필모의 열연이 있었다.
악인이 벌을 받으면 통쾌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지만 서이숙과 이필모의 열연은 시청자들까지 함께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두 사람의 연기는 배우에게 제1 덕목은 ‘연기력’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