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팝인터뷰③]박병은 "철저한 준비 없었다면 '암살' 출연 못했겠죠"

입력 2016-07-07 14: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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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지숙 기자
사진=이지숙 기자

[헤럴드POP=이소담 기자]"인생 참 슬퍼요, 슬퍼".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제작 빅스톤픽처스)을 관통하는 대사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되뇌게 되는 이 대사의 주인공 박병은을 최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냥’은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동근(조진웅)과 엽사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목숨을 건 16시간의 추격을 그린다.

박병은은 '사냥'에서 조진웅의 오른팔이자 엽사 무리 중 야비함을 도맡은 곽종필 역을 맡아 엽사 무리가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다. 특히 박병은이 후반부 내뱉는 "인생 참 슬퍼요, 슬퍼"라는 대사는 탐욕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에 박병은은 "원래 그 대사가 시나리오엔 한번만 나왔다. '인생 슬프다' 이 정도 느낌이었는데 뭔가 여기에 라임을 넣어 반복적으로 사용해 쓸쓸함을 강조하는 중요한 대사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반복했다. 틈만 나면 그 대사를 했다"며 "완성된 영화에선 3번 정도 나오더라. 3개 정도 건졌으면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구나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 대사를 좋게 봐준 관객들이 있어서 잘했구나 싶다"는 박병은은 "죽은 노파를 묻으면서 '인생 참 슬프다~'라면서 대사를 즉석에서 노래로 불렀는데 그건 부각이 안 됐다. 이우철 감독님과 조감독이 내게 어디서 들은 것 같다고 표절 아니냐고 하더라. 하하. 즉석에서 그냥 한 건데 말이다. 나중에 음원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곤 했는데 결국 안 나왔죠 뭐"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앞선 대사 말고도 '사냥'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아 달라 부탁하자 박병은은 "빗속에서 내 왼쪽 볼이 칼에 찢기는데, 그러고 나서 조진웅에게 가서 외치는 장면이 있다. '총 줘봐! XX! 총 줘보라고!" 하고 외치는데 당시 빗속에서 오래도록 촬영하면서 지쳐있었고, 그런 감정이 쌓인 상태라 정말 화가 나서 막 내뱉었다. 극중 상황도 안 좋고 말이다. 그 감정이 실제같이 나와서 정말 좋았다"고 답했다.

날것의 연기도 물론 박병은의 특기지만, 캐스팅 과정에선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하는 배우가 바로 박병은이다. 박병은은 "'사냥' 초반에 엽사들이 금맥을 찾아 산을 오르는데, 거기서 곽종필이 불필요하게 멧돼지 사냥을 한다. 동근이 그걸 짜증스럽게 쳐다보면 종필이 소품인 칼을 들고 흔들면서 '멧돼지 배받이살에 소주한잔 먹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장면 대사가 애드리브였다"며 "사전에 멧돼지 농장에 전화를 걸어서 육회로 먹으면 가장 맛있는 부위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갈비와 배 사이에 배받이살이 있는데 거기가 가장 연하고 적당히 지방도 있어서 맛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박병은은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의 약혼자이자 일본군 장교 카와구치 역 오디션을 볼 당시, 직접 핸드크림을 준비해 손에 바르면서 카와구치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설정으로 사용했다. 이를 본 최동훈 감독이 정말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이 장면은 실제 영화에도 사용됐다. 이처럼 박병은은 캐릭터 하나를 만들어가는 데도 허투루 하는 법 없이 수많은 사전 준비 작업을 거친다고.

"배역을 준비하는 건 내겐 가장 큰 즐거움이다. 캐릭터를 위해 뭔가를 공부하고 알아보고,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상황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다. 정말 신나고 재밌는 일이다. 그 신나는 마음이 연기를 계속 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다. 캐릭터를 조금이라도 더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소품이나 설정이지 않나. 카페나 그런 데서 혼자 시나리오를 볼 때도 '이 인물은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까?' '어떤 걸 해야 관객들이 좋아할까?' '다른 대사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설렌다. 그렇게 완성된 장면이나 설정이 관객들을 만나고, 정말 좋다는 반응이 나올 땐 진짜 뿌듯하다. 그럴 땐 놀지 않고 공부하고 준비하길 잘했구나 싶다."

평소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 한다는 박병은은 ‘사냥’에서 보여준 얄미운 연기 비결을 묻자 “노메이크업과 민낯?”이라며 “원래 누군가를 관찰하고 흉내 내는 걸 즐긴다. 친한 형이 있는데 이번엔 그 형을 참고했다.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상상을 해보고, 상상력이 고갈되면 실제 인물들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술을 마실 때도 상대방의 말투 뉘앙스나 행동을 보곤 한다. ‘저렇게 술값을 안 내는구나’ ‘어떻게 4차까지 술을 마시면서 한 번도 안 낼 수 있지?’ 하고 말이다”고 술값을 안내고도 밉지 않은 비법을 관찰했다고 말해 다시금 폭소를 유발했다.

성대모사 달인이기도 한 박병은은 “‘사냥’에서도 배우들 말투를 따라하며 놀곤 했다. 조진웅 한재영 등등 모두를 따라했었는데, 안성기 선배님 성대모사를 했다는 말을 듣고 안성기 선배님이 자기 앞에서 직접 해보라고 했다.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더라. 하하. 혹시나 혼날까봐 안 했다”고 촬영장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이처럼 유쾌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배우 박병은. ‘사냥’ 차기작인 ‘원라인’에서는 주연을 맡은 그다. 이에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은 소감을 묻자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난 주연 조연을 가릴 마음이 전혀 없다. 한두 장면만 나와도 그 역할로 충분히 내가 해낼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라도 할 생각이다”며 “그런 점에서 ‘암살’ 최동훈 감독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암살’ 때문에 감사하게도 시나리오나 작품 출연 제의가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예전엔 감독님이나 영화 관계자를 만나면 항상 어떤 영화에 나온 누구라고 설명하고, 모르겠다며 영화를 안 봤다고 하면 직접 검색을 해서 영화 스틸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에 대해 스스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젠 ‘암살’에서 일본군 장교 카와구치 역이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알아봐준다. 날 각인시킬 수 있는 작품을 하나라도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암살’로 인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암살’ 오디션을 4차까지 봤는데 그때 정말 열심히 한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도 외우고 캐릭터에 대한 리포트도 쓰고, 없는 살림에 일본군 군복까지 빌려다가 입고 다녔는데 말이다.”

오디션을 보기 전 이미 캐릭터의 60~70%를 만들어낸 뒤 임한다는 박병은은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려 노력한다. 그때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가는 편이다. 그러면 막상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할 땐 정말 편하다. 연극을 하기 전에 한두달 정도 연습하는 것처럼, 오디션도 하나의 무대라 생각하고 몰입해서 준비한다. 대사도 다 외워가는 편이다”고 밝혔다.

혹여 준비를 했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져 배역을 맡지 못하게 되면, 그간의 준비가 너무 소모적인 것이 되진 않느냐는 물음에 박병은은 “ 그 준비 과정이 내겐 많은 도움이 된다. 절대 소모적인 일이 아니다. 이번에 떨어졌어도 나중에 비슷한 캐릭터를 맡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나. 오디션 또한 배우에겐 공부다. 만약 ‘암살’ 오디션에서 탈락했다면 그걸 기반 삼아서 일제강점기 배경의 다른 영화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웃음 지었다.

이어 박병은은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오디션에 떨어지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다. 그냥 홀가분한 기분이랄까.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캐릭터가 맞지 않거나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난다”며 연기에 대한 욕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물론 연기는 힘들고 괴롭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나도 연기가 뭔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맞는 건지, 불확실성 때문에 보는 사람이 과연 내 연기를 납득할 수 있을지 걱정도 했다. 그렇게 30대 초중반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자신을 괴롭히곤 했는데, 어느 순간 필모그래피가 쌓이다 보니 강박 같은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있는 걸 카메라 앞에서 솔직히 풀어내게 됐다. 예전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신경 썼는데, 지금은 어차피 내가 하는 연기는 박병은 안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질책하는 걸 관뒀다”는 박병은은 “결과에 대해서도 내게 호의를 베푼다고 해야 하나? 최선을 다했고, 그게 최고였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연기가 즐거워졌다. 물론 슬프고 절망적인 역할을 밭게 되면 또 날 괴롭힐지도 모르겠지만, 전보다는 숨 쉴 틈이 생겼다”고 말했다. 조금은 늦었지만, 늦은 만큼 더 탄탄대로를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박병은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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