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전하나 기자]김대성이 그리워했던 어머니 연락을 받았다.
전날 20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6년동안 어머니를 찾던 김대성이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사찰음식 1세대 명장 대안스님이 건강한 아침 상을 차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대안스님은 “스님 공양하셔, 공양합시다”라며 친자매 지은스님을 불렀다. 이어 대안스님은 “제 위에 저보다 4살 많은 언니 스님. 많아요 자매든 형제든 생각보다. 같이 지내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스님은 몸이 안 좋으시니까 제가 이제 신경을 써드려야지”라고 지은스님을 소개했다.
대안스님은 “거의 10년 가까이 질병치레를 했다. 갑상샘항진증으로 살이 12kg 정도 붙고 이러니까. 산에 약초 캐러 다니는 분이 계셨다. 그분들을 따라다니면서 아 약초라는 것이 있구나. 그것을 우리 생활에 접목해서 우리 식탁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거,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됐죠”라며 30년을 사찰 음식에 바친 이유를 밝혔다.
대안스님은 “우리 어머니가 너무 단명하셨다. 남들은 다 엄마가 있는데 나는 왜 없지? 그런 슬픔, 비애? 그런 것을 어렸을 때 가지고 있었다. 나도 결혼해서 일찍 죽으면 내 아이에게 똑같은 아픔을 줄 텐데.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라며 8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슬픔으로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녀가 되려고 했었다는 대안스님은 “지은 스님한테 갔다. 그리고 ‘내가 수녀가 되려고 갔는데 나하고 안 맞는 거 같아.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더니. ‘너도 깎아.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 와서 해 봐 안 되면 가면 되지’ 그래서 이제 불교를 배웠죠. 공부를 하면서 이런 곳이라면 내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갈 수 있겠구나”라며
직접 장을 담근다는 대안스님은 “저희가 담근 장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기본 양념이 맛있으면 솜씨에 관계없이 음식이 맛있게 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언니 지은스님의 식사를 더 세심하게 챙긴다는 대안스님은 “당뇨가 좀 있으셨는데 병든 노스님을 10년 넘게 보시다가 본인 건강을 안 챙긴 거지 그러다가 투석까지 하게 된 거다. 투석도 안 하고 간다고 하는 거다. ‘더 살아서 뭐 하니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생각할 때 이렇게 아파서 남에게 추레하게 살다가 가고 싶지 않은 거다. ‘좀 더 보고 살다가 갑시다’했다”라며 친언니 지은스님과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피자와 파스타를 만드는 대안스님은 “우리는 사찰 음식이지만, 사람들이 한식을 좋아하는 분도 있지만 젊은이나 절집에 있는 스님들조차도 바깥 음식을 먹고 싶어 해요. 근데 먹을 데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들면 여기 와서 먹을 수 있죠. 지중해식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저희가 제대로 만드는 거죠”라고 설명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데뷔 6년 차 트로트 가수 김대성이 새벽 3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김대성이 수산물 도소매 업체가 자신의 일터라고 말했다.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김대성은 “전통시장이나 마트 수산 팀장님들이 오셔서 이 시간대에 물건을 사가신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김대성이 무대에 오르기 전 지갑에서 한 여인의 사진을 꺼냈다. 김대성은 “항상 행사 가기 전에 많이 떨리거든요. 근데 이렇게 보고 가면 힘이 좀 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무대를 하던 김대성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잃어버리고 할머니랑 살았어요. 혹시나 주위에 아시는 분 있다면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사연을 알렸다.
김대성은 “어머님이 어디 계신지 생사도 알 수 없고. 제가 갖고 있는 건 사진 하나하고 이름 석자밖에 없어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제가 큰 가수가 되려는 이유 중 하나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며 가수가 된 이유를 밝혔다. 무대가 끝나고 김대성은 출입문 앞에 자리를 잡고 어머니를 찾는 전단지를 직접 나눠줬다.
3남매라는 김대성은 “어머님이 있는 거 자체를 몰랐다. 아버님은 명절에 어쩌다 오시면 맛있는 거 사주시고”라며 가족 관계를 밝혔다. 김대성은 6년 전에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됐다며 “아버지가 밤에 찾아오신거죠. 네가 알아야 될 게 하나 있다고. 그때 딱 얘기하신 거다. 3형제 중에 저의 엄마가 다르다는 거예요. 정말 그때는 표현을 할 수 없었어요 눈물이 나고 감정이 복받치니까. 그때는 정말 슬펐습니다”라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지금은 폐가가 된 어릴 적 살았던 집에 찾아간 김대성은 “큰아버지가 술 드시고 우리를 힘들게 하고. 매일 맞았다. 시키면 무조건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밖엔 없었다. 집 짓는 데 가서 벽돌 쌓고 그 어린 나이에 농사 짓고 소로 밭도 갈고 그정도로 힘들었다. 학교도 몇 번 빠졌다. 선생님이 찾아왔던 적이 있다. 엄마든 아버지든 우리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좀 간절했죠”라며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대성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제가 누구한테 의지를 할 수 없더라고요.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그게 어머니였다. 그래서 내 편이 엄마다. 엄마를 꼭 찾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라며 어머니를 찾게된 계기를 밝혔다.
제작진이 김대성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그를 찾아갔다. 김대성은 어두운 표정으로 “연락이 갑자기 와 가지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뭐 좋은 거보다도 그냥 그렇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김대성은 “어머니 맞는 거 같다. 대화하면서 궁금한 걸 좀 여쭤봤는데 제가 얘기하는 거의 90%는 맞으시더라”라고 말했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어머니의 연락에 김대성은 “지금 가정이 있으셔서 좀 저랑 연락하는 게 껄끄러우신 것 같아요.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할머니의 산소를 찾아간 김대성은 “찾았는데도 이렇게 속이 상하네요. 결혼을 하셔 가지고 신랑님도 있으시고 따님들도 있으시고 해서. 내가 이렇게 자식이 있다는 얘기를 못 하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3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42년 동안 기다렸는데 뭐 1년을 못 기다리겠어요. 한번 기다려보겠습니다. 할머니”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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