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범죄의여왕②]기승전 '신파'에 지친 당신이라면

입력 2016-09-08 1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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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한국 상업영화와 불가분의 관계인 건 무엇일까. 바로 신파다. 그게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수사물, 스파이물, 전쟁 블록버스터, 로맨틱 코미디까지 기승전 눈물로 귀결된다. 지나친 감동 강박증, 특히 천만 관객을 겨냥한 여름 성수기 영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법이다.

그런데 최근 이 익숙한 경쟁구도 가운데 낯선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제작 광화문시네마)이다.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경한 아줌마 미경(박지영)의 이야기를 그렸다.

'범죄의 여왕'은 여러모로 한국 관객의 눈에 익숙한 구도를 벗어난 작품이다. 일단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다. 미경은 고시촌을 휘저으며 의문의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다. 그의 무기는 폼 나는 권총이나 위협적인 사시미칼이 아니라, 집밥과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이다.

그의 옆에는 고시원 관리사무소 직원 개태(조복래)가 있다. 히어로 영화로 치면 사이드킥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셜록' 시리즈의 왓슨 박사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조수인 줄 알았더니 웬걸, 미경과 개태 사이에는 남녀의 묘한 기류도 흐른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관계, 상당히 흥미롭다.

이뿐만 아니다. 미경의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는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캐릭터들이 포진해있다. 사법고시 2차만 10번 떨어져 고시촌의 전설(?)이 된 장수생 하준(허정도)부터, 공부하랬더니 인간 빙고만 주구장창 해대는 반백수 덕구(백수장)가 있다. 또 예쁘장하게 생겨서 쌍욕을 달고사는 게임폐인 진숙(이솜)도 있다. 아줌마가 주인공이라기에 모성애가 주제인 줄 알았더니,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캐릭터 무비의 탄생이다.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이 듣도 보도 못한 조합은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이요섭 감독의 솜씨다. 이 영화의 시작은 자신이 살던 고시원에 수도요금이 50만 원이 나왔던 실제 경험이 토대다. 허름한 고시원은 어떻게 활극의 현장이 될 수 있었을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그간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물의 구조를 약간 비튼 것. 이요섭 감독은 "스릴러에서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게 그간의 공식이었다. 나는 그걸 바꾸면 다른 시선이 보일 것이라고 봤다. 단지 성별을 달리했을 뿐인데 이 수사의 형식이 바뀌더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미경은 위협적이진 않지만, 경험과 연륜을 토대로 영리하게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범죄의 여왕'의 배경이 고시촌인 이유도 명확했다. 이요섭 감독은 "고시촌은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자들이 모인 장소다. 그런데 이들이 시험 치는 과정 안에서는 되게 이기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시험 전날에는 공부를 해야한다. 그게 시험이란 제도가 가진 아이러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외부인인 미경이 고시원을 휘젓고 다니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경이 고시원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제공한 그의 아들 익수(김대현)는 이요섭 감독 본인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많은 아들들은 엄마를 좋아하면서도 익수처럼 짜증을 부리곤 한다. 후회를 하면서도 그러길 반복한다.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범죄의 여왕'의 속 신스틸러 개태 역의 조복래는 회심의 캐스팅이었다. 이요섭 감독은 "조복래를 보자마자 '개태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라"라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조복래는 겉은 거칠고 사납지만 속은 여린 캐릭터의 양면성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범죄의 여왕'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이처럼 하나하나 공을 들인 캐릭터들은 '범죄의 여왕'의 최대 강점이다. 이 영화가 미경이 홀로 이끌어가는 구조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비결이다. 또한 아들을 둔 중년 여성이 주인공임에도 모성애에만 무게를 두지 않았다. 여성성을 간직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미경을 그려냈다. '범죄의 여왕'이 뻔한 감동에 호소하지 않는 유쾌한 활극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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