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박정문 기자] 김응수가 평양성 전투에서 패배의 쓴맛을 봤다.
22일 방영한 KBS 1TV '임진왜란1592' 제 4편(부제: 평양성, 삼국대전)에서는 조선과 명나라, 일본이 치열한 ‘평양성 전투’를 펼쳤다. 이날 방송에서 임진왜란 5년 전 조선과 일본의 모습이 그려졌다. 일본과 왕래가 없던 144년 동안 일본에서는 새로운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김응수 분)는 자신의 최측근 고니시 유키나가(박동하 분)와 함께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점령한 사실을 듣고 “세계가 일본과 같다”며 공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으로 가자”며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의 도자기와 면직물을 사기 위해 모두 은을 싸들고 명나라를 찾는다. 명나라에 세상의 모든 은이 모인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명나라 정벌을 위한 전초 기지인 히젠 나고야성의 건설을 완료했고 규슈, 시코쿠, 류코쿠 지역의 영주들 중심으로 총 9개 군단을 편성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총동원 병력 15만 8천7백 명, 예비 병력 8만 8천8백 명을 모아 전쟁에 대비하며 승리를 다짐했다.
1571년 포로로 끌려와 시마즈 가문의 가신이 된 명나라의 허의후는 주군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나라 정벌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허의후는 곽국안을 통해 “일본군이 해외 원정을 나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의 명나라 침략 계획에 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했다. 허의후는 ‘명나라 정벌의 선봉은 조선 왕 상감이 될 것이다’는 소문도 포함했고 전쟁 초기 조선과 명나라의 갈등은 허의후의 밀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쟁은 기회다”는 말과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만 대군을 이끌고 1592년 4월 13일 조선에 도착했다. 이틀 만에 부산진이 함락됐고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 온지 20여일 만에 한양이 점령됐다. 일본의 파죽지세 공격에 선조는 “왜적의 손에 죽을 수 없다. 명으로 가겠다”며 명나라로 망명을 요청했다. 임진왜란 전까지 조정에 나가지 않던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조선과의 의리로 요동의 기병 3천 명을 평양성으로 보냈다.
조승훈을 중심으로 한 요동군은 평양성의 지리는 물론 2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의 실체를 전혀 몰랐다. 결국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의 매복 작전으로 조승훈 부대 3천여 명 중 2천3백여 명이 전사했고 일본의 기세는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이 무렵 일본은 보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육로는 의병에 의해 막혔고 유일한 보급로 바닷길마저 이순신(최수종 분)과 ‘한산대첩’에서 패하면서 막히게 됐다.
위기를 느낀 일본은 명나라와 협상을 진행했고 50일 간 휴전했다. 그동안 명나라와 조선군은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워 일본과 맞설 준비를 마쳤다. 명나라의 이여송은 과거 왜구들과 싸움을 토대로 한 병법서를 참고했고 일본군에 강한 척가군을 대거 동원했다. 2만 명의 조선군도 평양성의 지리에 어두운 명나라 군의 선봉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 결과 16세기 최초 국제 전쟁이자 최대 근대적 화약 전쟁으로 불린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은 참패했다. '평양성 전투'로 일본은 최초의 패배와 최초의 후퇴를 경험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