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박수정 기자]“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내 손으로 황제를 만들고 키워 이 세상을 내 황제의 발아래, 그.. 황제를 내 발 아래, 그리하여 천하를 내 발아래 둘 것이다.” ‘도깨비’를 떨게했던 대사들이다.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극본 김은숙/연출 이응복/이하 도깨비)는 도깨비 김신(공유 분)과 지은탁(김고은 분)의 애절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로맨틱코미디물. 달달한 로코를 호러로 탈바꿈시키는 유일한 악역이 있었으니, 바로 간신 박중헌이었다. 박중헌은 고려시대에서 김신, 김선(유인나 분), 왕여(이동욱 분)가 모두 비극적 죽음을 맞게 하고, 900년이 지난 뒤에도 악귀로 나타나 파국을 만든 장본인이다. 배우 김병철이 박중헌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병철은 지난해 KBS 2TV ‘태양의 후예’에서 우르크 태백부대 대대장 박병수 역할로 얼굴을 알린 인물. 박병수는 정의롭고 듬직한 군인이지만, 조금씩 보여주는 코믹한 빈 틈으로 극의 활력을 더했다. 김병철은 ‘도깨비’에서는 박병수와 180도 다른 인물로 또 다시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신스틸러가 됐다. 그는 “이번 역할 자체가 주인공을 대적하는 인물이고, 등장방식이나 시점이 예상치 못하고 인상적이어서 그만큼 반응이 강한 것 같다”며 역할에 대한 관심에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김병철은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박중헌 역할을 즐겼다.
“시청자로서, 또 연기자 입장으로서 박중헌이 다시 등장할 때 그런 식으로 등장할지 몰랐어요. 다시 등장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어떤 식일지 몰랐죠. 저도 환생을 할 것인지, 저승사자로 나올 것인지 궁금했어요. 이 정도의 악인이 그냥은 등장하지 안할 거라곤 예상했는데 악귀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도 너무너무 재미있었죠.”
박중헌이 악귀로 등장하기 전까지 수많은 추측이 있었다. 김비서(조우진 분)가 박중헌의 환생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비서와 박중헌의 닮은 꼴 합성 사진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병철은 “그 역할 자체만 보면 박중헌과 김비서 외모가 그렇게 닮지 않았는데 아마도 과거 인물들이 환생을 하니까 연결시킨 게 아닐까”라며 “남아있는 인물들 중에 누구일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비슷한 이미지여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 같다. 비교한 사진을 보니 제가 봐도 비슷하더라”고 말했다.
박중헌은 900년 전 왕여와 김선, 김신 남매 사이를 갈라놓고 왕여를 자살하게 만든 인물이다. 결국 도깨비가 된 김신에 의해 죽었지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악귀가 돼 900년을 떠돌았다. 지은탁이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갑자기 악귀 박중헌이 등장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특히 검은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은 더욱 사악한 기운을 뿜었다. 혀 장면은 김병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대본에는 ‘웃는 모습인데 검은 혀가 보인다’는 지문이 있었어요. 그 다음 지문에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가 있었던 거 같아요. 웃는데 혀가 보이려면 폭소여야 하잖아요? 폭소할 상황은 아니었고, 혀가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죠. 박중헌이 말을 많이 하고, 평소에 말을 많이 하면 입술이 마르니까 입술을 적시자는 생각에 혀로 입술을 적시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저는 습관적으로 입술을 적신 것일 뿐인데 그걸 하면서 뱀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시청자들이 보기엔 일부러 뱀 같은 걸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입이 말라서 입술을 적신 것뿐이에요. 하하.”
악귀가 된 박중헌은 결국 김신이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직접 뽑아 그를 죽인다. 박중헌은 소멸이 된 것일까. 저승으로 간 것일까. 김병철은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시청자분들도 의견이 다르더라”며 “제 생각은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값을 다 치를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병철은 직접 연기한 만큼 박중헌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보였다. 그는 “다른 분들은 박중헌이 평생 영원히 지옥불에서 타야 된다고 생각하더라. 하지만 인물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박중헌이 악행을 저지르기까지 배경에 대해 홀로 고민한 흔적을 드러냈다.
“왜 이렇게까지 악한 행동을 할까요. 900년 구천을 떠돌았는데도 왜 그런 행동을 할까요. 이 사람의 악행 자체를 접어두고 생각하면, 처음에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다는 신분체계에 대한 부당함을 느끼고 바꿔보려고 한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하게 된 행동은 안 좋았죠.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사람들 모으고 의견을 받아 바꿔야 하지만, 그 사람은 방해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 아닐까요? 900년의 세월 동안 생존의 행동 패턴이 반복된 거 같아요. 죽이고 복수하는 것이요. 이 사람이 그걸 선택하는 것보다 벗어나기 힘든 틀에 떠밀린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악역 하나에도 다양한 배경을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진지한 태도를 엿보게 했다. 2001년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를 시작하고,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방송, 영화 등에도 얼굴을 자주 비추게 된 김병철은 ‘도깨비’를 통해 또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올해 “다른 유형의 역할을 해보고, 그것을 통해 관객분들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여태까지 했던 역할이 코믹한 부분이 많았죠. 이번에 박중헌을 만나면서 코믹한 부분이 없는 악역을 하게 돼 역할을 소화하는 영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저에게 좋은 변화죠. 앞으로 더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