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팝업리뷰]'아티스트' 꿈과 현실의 살벌 투쟁기, 웃음은 거들 뿐

입력 2017-03-09 06: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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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포스터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포스터 / 콘텐츠 판다 제공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지독한 현실주의자와 답 안 나오는 이상주의자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진짜와 가짜, 이상과 현실에 얽매인 청춘들의 욕망을 블랙코미디로 담았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건 진정성일까 명예와 부일까.

9일 개봉한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이하 '아티스트', 감독 김경원/제작 영화사 소요, 백그림)는 아티스트 지젤(류현경)과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이 주인공이다. 타고난 눈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재범이 자의식 강한 화가 지젤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지젤에 대한 추모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은 지젤을 비추며 과거를 되짚는다. 지젤은 전생에도 그리고 현생에도 자신이 예술가라 믿는 족속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 들으며 자랐으니 그럴 수밖에. 커피의 본질은 에스프레소이며, 뽕짝은 거부하고 클래식을 듣는 취향의 소유자다.

하지만 제3자의 눈에 지젤은 잘난 척 중독자일 뿐이다. 장황한 설명 뒤 돌아오는 건 "요즘 누가 그렇게 대놓고 예술가병 걸린 사람처럼 그래"란 비아냥 뿐. 즉 지젤은 듣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한마디로 마주치면 매우 피곤한 스타일이다. 게다가 프로필도 상당히 수상하다.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니. 중국이나 일본 인심 써서 미국도 아닌 웬 덴마크?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그러거나 말거나 지젤은 보다 높은 차원의 예술을 꿈꾼다. 그는 예술가는 씨가 마르고 쓰레기와 양아치만 남은 세태가 속상하다.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은 선배의 귀에 대고 "당신의 작품은 과대 평가되었다"라고 속삭이는 이유다. 보는 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소신파다. 하지만 생계 앞에서는 굳센 자존심도 별 수없다. 예술가는 살벌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내상을 입고, 결국 개인전시회를 열기로 마음 먹는다. 언젠가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상이 알아주리라 믿고 싶으니까. 붓을 들었을 땐 천재였지만, 자신을 '무스펙'으로 낙인찍는 입사지원서 앞에는 한없이 작아지는 그다.

그런 지젤의 눈앞에 재범이 나타난다. 업계에서 가장 핫하다는 갤러리 대표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그럴듯한 명함을 팔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안목. 돈이 될법한 그림은 재깍재깍 알아본다. 시력은 안 좋아도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일반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지젤의 작품이 그의 눈에 띈 건 당연지사. 재범은 '지젤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하지만 잘 굴러가던 계획은 과속방지턱을 만났다. 지젤의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언젠간 빛을 볼 날만을 기다리던 재능 있는 예술가의 죽음이라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 될 법한 원석이 갑자기 눈앞에서 증발해버렸다. 이미 거액의 투자는 진행된 상황. 대박인 줄 알았더니 쪽박이다. 과연 재범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스틸 / 콘텐츠 판다 제공

'아티스트'는 표면적으로는 예술계에 만연한 상업주의를 풍자한다. 하지만 진짜 메시지는 삶을 움직이는 동기에 대한 물음이다. 지젤은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이상향을, 재범은 팍팍하고 구질구질한 현실을 상징한다. 꿈과 이상 사이에서 버둥대는 인물들의 소동극이다. 우리가 그럴듯하다고 믿었던 허울 좋은 가치들이 보기에 따라 얼마나 실없는 소리인지를 그린다.

이 위트 있는 블랙 코미디의 방점은 배우들이다. 류현경은 재능과 강단은 있지만 사회성과 예의는 실종된 지젤 그 자체다. 대책 없는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치열하게 계산해서 연기한 결과물이라고. 21년차의 내공이 녹아있다. 청룡의 트로피를 거머 쥔, 지난해 가장 뜨거운 유망주였던 박정민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인 지젤을 상대하는 재범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야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결의 인물이기에 그의 고군분투는 짠하고 흥미롭다.

두 사람은 전작 '오피스'(2014)로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이들의 친분은 파트너 간의 교감이 중요한 신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술자리 신이다. 대부분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채워진 부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들이 상의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대사들이다. 시한폭탄 같은 지젤과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말려드는 재범의 모습은 웃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다. 인연과 친분으로 다져진 이들의 무르익은 호흡을 느낄 수 있다.

데뷔와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진 아티스트 지젤, 그리고 큰 성공을 눈앞에 두고 놓친 재범. 기구한 운명과 달콤한 욕망이 만나면 드라마가 되는 건 당연지사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일과 진정한 자아실현, 살면서 더 중요한 건 과연 뭘까. '아티스트'가 당신의 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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