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여배우들이 중심인 영화는 안된다는 편견, 여기에 주인공이 흑인여성이란 단서까지 붙이면 어떨까. 아직도 만연하는 이런 선입견을 60년 전에 이겨낸 세 여인들이 있다. 유인위성을 최초로 달에 쏘아올린 미국의 우주산업 뒤에 숨은 공신들, '히든 피겨스'다.
23일 개봉한 '히든 피겨스'(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1960년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NASA 프로젝트의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NASA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타라지 P.헨슨),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가 주인공이다.
어찌 보면 '히든 피겨스'는 상당히 독특한 영화다. 일단 여성, 그것도 흑인이 주인공이다. 작중 배경이 인권의식이 부족했던 1960년대이며, 인물들의 직업이 첨단과학의 상징인 NASA의 직원임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천재성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지만 이들이 살고 있던 시대는 성별과 인종에 따라 이미 출발선이 정해져 있었다. 화장실과 사무실, 심지어 커피포트까지 피부색으로 구분짓던 차별의, 차별을 위한, 차별에 의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도형과 공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수학천재 캐서린 존슨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는 초기 IBM 전자 컴퓨터를 능가하는 계산 실력으로 존 허셜 글랜의 지구 궤도 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왕복 1.6km의 화장실과 엄청난 업무량, 불리한 경쟁을 강요하는 상사, 주변의 냉랭한 시선마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메리 잭슨 역시 투지와 열정으로 태생적 유리장벽을 깬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백인 전문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던 그는 긴 법정 공방을 통해 최초로 흑인 입학생이 된다. 도로시 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NASA 최초 IBM 컴퓨터가 도입이 되자, 앞으로는 전자 컴퓨터의 시대가 열릴 것임을 직감한다. 이에 그는 자기계발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배운다. 물론 이마저도 물론 쉽지 않다. 프로그래밍을 위한 서적은 백인들을 위한 도서관에만 있기 때문이다. 도로시 본은 이 모든 난관을 당차게 헤쳐나간다.
요약하자면 '히든 피겨스'는 차별과 편견에 맞선 약자들의 이야기다. 인종과 남녀의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지극히 우아하고 위트가 넘친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각박하고 불합리하지만, 세 여인은 강인한 의지와 실력으로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억지 감동을 조성하지 않아도 절로 웃고 울게 된다.
사실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이 겪은 인종과 성별 차별은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 중이다. 여러 핸디캡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세 여인의 이야기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는 '히든피겨스'가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복병으로 떠오른 비결이다. 실화의 감동과 믿고 보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국내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