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성선해 기자] "본심을 숨기지 않고, 목표를 위해 쭉 달려가는 모습이 섹시하게 느껴졌다. 그런 걸 살려서 표현하면 재미있겠더라."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제작 미인픽쳐스, 곽픽쳐스)은 기본적으로는 케이퍼 무비다. 은행을 상대로 벌이는 대출 사기, 일명 작업 대출이 소재다. 원라인이란 은어로도 불린다. 2000년대 중반 만연했던 범죄 수법이다.
젠틀하고 매너 있게 은행 돈을 받아드린다는 '원라인', 이 영화는 뛰어난 캐릭터 무비이기도 하다. 순진한 미소와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홀리는 민 대리(임시완) 여유 만만한 베테랑 장 과장(진구), 허당 기질이 다분한 위조 전문가 송 차장(이동휘), 개인 정보의 여왕 홍 대리(김선영) 등 주요 인물들의 색과 포지션이 명확하다. 이들의 앙상블은 '원라인'을 이끄는 힘이다.
그중에서도 박병은(40)이 연기한 박 실장은 단연 눈에 띈다. 인물의 색이 가장 선명하기 때문이다. 돈과 성공을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야심가다. 체면치레나 양심의 가책도 없다. 뒤돌아 보지도 않고 그저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정확한 수금이 신조로, 한 손에는 시그니처 아이템인 다이어리를 들고 다닌다. 뼈대에 철심히 박힌 물건으로, 장부이자 흉기 역할을 한다. 모서리에 늘 피가 묻어있는 이유다. 박 실장은 말보단 주먹이 먼저 나가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야망을 갖고 인생을 개척해야 하지 않겠냐?"가 캐치프레이즈다.
어찌 보면 욕망에 가장 솔직한 인물이다. 박병은 역시 이 점에 끌렸다. "어차피 장 과장(진구), 송 차장(이동휘) 등도 다 돈을 원한다. 남들을 도와주는 게 '잡(Job)'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반면 박 실장은 권력도 돈도 갖고 싶어 한다. 그런 자신의 속내를 까발리고 시작한다. 남자로서도 섹시하단 생각이 들었다."
"철심이 박힌 다이어리는 양경모 감독의 아이디어다. 진짜 쇠로 된 거랑 소품용 두 가지를 준비했다. 근데 소품용도 꽤 아팠을 거다. 이동휘와 박유환이 피해자다. 만약 그런 장면에서 상대방이 찡그리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나도 부담이 된다. 근데 다들 아무 말 없이 '괜찮다'면서 참아주더라. 내가 형이라 그런가. 덕분에 현장에서 풀스윙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치 않은 감사를 드린다.(웃음)"
화가 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박 실장. 야망에 사로잡혀 점차 변화하는 그를 위해 박병은은 표정 하나, 손짓 하나까지 연구했다. 평소 배역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는 배우다웠다. 볼수록 섹시한 박 실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박 실장의 본명은 강지원이다. 이름까지 깔끔하게 멋지다. 박병은은 "강한 인물의 이름이 중성적일 때 나오는 매력이 있다"라며 "실제 나는 주먹은 안 내민지 한참 됐다. 학창시절에나 그랬지. 평소에는 화가 나면 차분하고 냉정해진다"라며 웃었다.
"개인적으로 박 실장의 대사 중 '돈은 어차피 다 더러운 거야.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야'란 구절을 좋아한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근데 다들 욕망을 감추는 거다. 하지만 박 실장은 솔직하니까. '왜 뒤에서 호박씨 까는 거야?' 싶은 거지."
'사냥'(2016)의 엽사 곽종필,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해결사 강 프로 그리고 '원라인'의 박 실장. 최근 박병은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서늘한 얼굴의 범법자란 공통점이 있다. 또한 그의 얼굴을 대중에게 알린 '암살'(2015)에서는 일본군 장교 카와쿠치 역을 연기했었다. 이쯤 되면 박병은표 '악의 연대기'라 할 수밖에. 연이은 센 캐릭터, 혹시 부담스럽진 않을까.
"예전에 '아이들'(2011)이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소재다. 내가 거기서 연쇄살인범 역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계속 악몽을 꾸더라. 진짜 징그럽고 파렴치한 내용이었다. '정말 내가 이걸 만들어냈나' 싶어서 힘들었다. 내 상상력의 산물이니까. 하지만 난 배우를 1~2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걸 쳐내는 작업들을 계속했다. 촬영이 끝나면 낚시를 가거나 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친구들과 즐겁게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 조금씩 버렸다."
박병은은 "예전에 선배들이 그렇더라. 슬프고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을 연기하고서도 '컷' 소리만 떨어지면 정말 밝아 보이더라.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싶었는데 그런 이유에서였다. 빨리빨리 지우고, 또 집중하고 그런 것 역시 배우로서 필요한 훈련이다. 다음 작품에 들어갔는데 전작 캐릭터가 가슴에 남아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그의 다음 행보는 KBS 2TV '추리의 여왕'이다. 박병은은 훈훈한 외모에 젠틀한 미소로 팬클럽까지 몰고 다니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 우 경감 역을 맡는다. '원라인' 박 실장을 보내고 그가 담아낼 새로운 인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