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공연장이 낯설게 느껴졌다. TV 스튜디오로 변신한 무대는 토론 방송 현장이라는 현실감을 부여했고, 학문적 용어로 날을 세워 주장하거나 반박하는 패널들은 배우가 아닌 토론자에 더 가까웠다. 결코 가볍지 않게 다뤄진 인류 기원에 대한 토론은 인류의 미래로 이어지며 반전과 함께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지난 5월 19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한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이 오는 7월 9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2016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 우수작품 선정작으로 지난 2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실제 방송의 백분토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공연은 대중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창조론 vs. 진화론'이라는 주제로 치열한 100분 토론을 펼친다.
과학·사회·종교·예술 각계 인사로 분한 배우들이 펼치는 실감 나는 토론을 접하게 된 관객은 극장에 온 관람자의 입장이자 토론 현장의 패널이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더불어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기원'에 대한 토론을 보고 들으며 직접 생각하는 시간도 공유한다.
실제 TV 스튜디오 같이 구성된 무대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입장할 때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TV로 보이거나, 착석한 관객의 뒷모습이 보이는 순간은 이곳이 공연장인지 방송국에 방청하러 온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미묘한 공기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캐릭터가 제대로 확립된 각 인물이 등장하며 공연 분위기는 고조된다. 물론 100분 동안 온전히 토론 형식으로 이끌어가는 공연에 1%의 지루함도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오고 가는 날 선 주장과 날카로운 하이톤 목소리는 관객에게 긴장감과 함께 피로감 또한 선사한다. 덕분에 공연장의 공기가 가장 유하게 변했을 때가 중간 광고 타임과 나대수가 지식과 인지 능력에 대한 실험을 관객과 함께 실행한 순간이다.
하지만 지루함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작품의 큰 기둥인 토론 내용이다.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발언을 선사하는 출연자들은 과학, 사회, 종교 등 자신의 전문 분야 지식을 내세워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정보가 오가지만 평소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해 관심 없었던 사람도 큰 불편함 없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객은 스스로 어느 의견에 공감하고 반대하는지 생각할 수 있다. 특히 극 초반 오직 말을 통해 오가던 주장을, 극 말미에는 시각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상을 곁들여 의견을 피력했는데, 집중도가 낮아지는 시점에 새로운 자극이 될 만한 아이템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극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작품에서 말하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살짝 살펴보면, 창조론은 '인간, 삶, 지구, 우주가 신의 개입에 의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생명은 신이 창조한 것이며,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 해부학자이면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곤충학자 파브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루니쿠스 등의 학자들 모두 진화론 등장 전까지 창조론을 믿었다고 한다.
이에 반대되는 이론인 진화론은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해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일으키는 자연 현상'을 가리키는 이론으로, 찰스 다윈이 진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모든 생물은 신이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믿던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생물학은 물론 철학, 사회학 등이 대부분 다윈의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텍스트로 나열하면 어렵고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 주제가 생명력 있는 정보가 될 수 있던 것은 개성 뚜렷한 인물들의 역할이 컸다. 사회자는 생각보다 역할이 없지만, 토론을 중재하고 진행될 수 있게 도왔다. 사회자 외 모든 출연자는 누구에게 기울어지지 않게 발언 시간을 배정받았다. 토론에서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예시이자 어딘가에는 꼭 있는 이성혜(절실한 기독교인)라는 인물은, 분명 소리치고 고집하는 무례함이 존재했지만 극의 분위기를 높이는 동시에 이 작품을 가장 토론처럼 끌고 갔다. 전진기(무신론자)는 있을 법한 토론자라 현실감을 높였고, 현충희(기생충 미녀박사)는 극 마지막에 영상을 첨부한 근거로 활약했으나 존재감이 약해 기억에 남는 것은 비주얼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나대수(뇌 과학자)는 마치 생떼를 쓰는 듯한 날카로운 분위기를 가장 논리적인 말로 누그러뜨렸고, 육근철(서울대 출신 뇌섹남)은 분위기 메이커이자 촌철살인 멘트로 꼬집는 역할을 했다. 우지현(NASA출신 천문학 박사)의 캐릭터는 훌륭한 인성과 분별력을 지녔는데, 억지로 영어 발음을 써가며 권위자 임을 드러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KAIST(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자이자 최근 tvN '알쓸신잡'에서 과학박사로 활약 중인 정재승 교수는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에 대해 "대중들이 편하고 쉽게 문화을 즐기듯, 과학도 그렇게 즐기는 세상을 꿈꿨다. 이 작품은 그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울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하며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現 과학박사도 인정하고 재미를 느낀 '신인류 백분토론'은 소재의 참신함과 토론 주제의 무게, 그리고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재미 요소가 균형을 잘 잡았다. 2017년 버전도 충분히 좋았지만 이 작품은 현재 과학과 지식의 발전에 따라 계속 업그레이드 될 예정이기에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된다.
(사진 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