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 내에서 이현주 감독 사건의 은폐 정황을 파악, 징계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공식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 학생 간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영진위 측은 피해 학생이 지난 2월 1일 개인 SNS ‘#Metoo 캠페인’ 게시글로 공개한 ‘아카데미 책임교수의 고소 취하 종용 등 2차 피해 주장’에 대해 실시한 조사 결과 해당 정황을 파악, 징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2월 1일. 피해자 A씨는 자신의 개인 SNS 계정을 통해 KAFA 내 B감독이 동성인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또한 A씨의 남자친구 C씨 또한 해당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게시하며 사건을 공론화했다. 당시 C씨는 헤럴드POP에 “힘들게 2년 넘는 시간을 버텨왔으나, 반성 없이 활개하며 여성 인권의 아이콘처럼 비쳐지는 기만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며 “모쪼록 본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알려져 여성 간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이루어지기를 간곡하게 기원한다”고 입장을 밝혔었다.
피해자 A씨 측에 따르면 지난 2015년 4월 9일, B감독이 술에 만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던 자신을 간음했고, A씨는 한달이 지난 5월 19일 B감독을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B감독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했다. 이후 B감독은 항소를 진행했지만,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고 3심 판결인 대법원 판결에서 재판부는 B감독에 대해 원심을 확정했다. 이미 법적으로 종결이 난 상황이었지만, 재판 기간 동안 B감독의 행보와 KAFA에서 해당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사건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B감독은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입장을 밝혔다. B감독은 ‘연애담’을 연출한 이현주 감독이었다. 이현주 감독은 지난 2월 6일, 공식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싶습니다”라며 “저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이 일을 무마하거나 축소시키려고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판결이 난 사건이었기에 입장은 더욱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현주 감독이 영화 ‘연애담’을 통해 (사)여성영화인모임에서 주최하는 여성영화인 축제에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것 역시 문제가 됐다.
동성 간의 성폭행을 저지른 인물이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는 여성영화인상을 받는 것이 잘못됐다는 의견이었다. 피해자 A씨 역시 “재판 기간 동안 가해자는 본인이 만든 영화와 관련한 홍보활동 및 GV, 각종 대외 행사,영화제 등에 모두 참석했다. 올해의 여성영화인 상까지 받은 가해자의 행보는 나에게 놀라움을 넘어 인간이란 종에 대한 씁쓸함마저 들게 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 A씨는 해당 심경을 게시하며 “학교(KAFA) 교수가 가해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는 수차례 나를 불러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고 폭로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현주 감독이 수상했던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박탈했다. 이후 이현주 감독의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증언까지 이어졌고, 영진위 역시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7일 위원회 위원과 직원, 외부 전문가로 조사위를 구성해 사건 은폐 여부와 사무국에 보고되지 않은 경위 등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약 20일 동안 진행했다. 이러한 풍파 끝에 이현주 감독은 결국 피해자에 대한 사죄를 뜻을 밝히며 “내게 영화는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더 이상 영화일을 하지 않겠다"고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영진위 조사 결과 사건 은폐 의혹 역시 사실이었다. 영진위 조사위의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의 최초 인지자인 책임교수 D는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 사실이 확인 됐고, 피해자 A씨는 수차례 고소 취하를 요구 받는 과정에서 D교수의 여러 부적절한 언사로 인해 고통을 겪었음을 호소했다. 이어 D교수는 이현주 감독 측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 변호인이 의도한 바대로 피해자 A씨에게 불리하게 활용될 수 있는 취지의 증언을 했으며, 아카데미(KAFA) 직원에게 이현주 감독의 소송 관련 요청에 협조할 것을 부탁하기도.
또한 D교수를 제외한 다른 책임교수들까지 피해자 A씨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의사표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론화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방관으로 일관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위원장은 16일 피해자에게 조사 결과를 알리면서 직접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전했다고 전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는 해당 조사결과를 감사팀에 통보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마쳤고, 규정에 따라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 또한 이런 일을 예방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 내부 운영 체계를 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적극 모색할 방침임을 밝혔다. KAFA 내 조직적 사건 은폐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는 #미투 운동 전, 문화계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해왔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현주 감독 사건 이후에도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영화감독 김기덕, 조근현 등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문화계. 이제는 잘못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사과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자정 작업이 필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