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팝업리뷰]'클레어의 카메라', 역설로 가득한 관계라는 피사체

입력 2018-04-24 1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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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레어의 카메라' 포스터
사진='클레어의 카메라' 포스터

[헤럴드POP=안태현 기자] 관계라는 피사체는 역설로 가득 차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서사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작품의 창작 방식이 즉흥적이고 현장성에 기인하는 영향도 크지만, 그럼에도 홍상수 감독은 여러 작품 활동을 통해서 서사의 변형을 이뤄왔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경우 평행 서사에서 인물들이 취하는 태도의 결이 달라지며 변형되는 결(結)의 서사였다면, ‘자유의 언덕’과 같은 작품에서는 뒤죽박죽이 된 서사 사이에서 관객 스스로 서사의 틈을 이어가며 의미를 생성케 만든다. 그렇기에 최근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영화이기 보다 꿈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단편적인 서사들이 유기성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진다. 현실을 꿈의 영역으로 치환하며 서사는 역설의 성질을 띠기 시작한다.

현실이 있고 2차원적인 아이러니가 있다면 더한 차원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역설’은 그 단어 그대로 역설적이게도 삶의 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빛나는 백사장보다 질퍽한 진창에서 진주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하듯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꿈과 같은 서사로 삶의 아이러니를 역설적이게 전달한다.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이러한 광의를 담고 있다니. 물론 이 역시, 틈이 가득한 서사에서 의미를 찾고자 할 때 발생하는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서사의 틈이 너무나 벌어져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그 안에서 나름의 정리가 필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서사의 속성이다. ‘클레어의 카메라’ 또한 마찬가지다. 그간의 작품들에서 서사 간격을 벌려놓으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었던 홍상수 감독은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는 한 비밀스러운 여성을 기점으로 꿈과 같은 서사의 변형을 이뤄낸다.

사진='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사진='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여성의 이름은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다. 파리에서 고등학교 음악선생을 하고 있다는 클레어는 지인의 영화 상영을 축하하기 위해 칸을 찾는다. 항상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피사체가 될 법한 인물들을 사진에 담는다. 또한 그녀는 “가끔 시를 쓰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클레어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단서다. 비밀스러운 존재 클레어는 뒤틀리는 서사 속에서 하나의 이음새로 작용한다. 또한 그런 클레어의 역할은 인물들의 관계로 이어진다. 바로 만희(김민희 분), 양혜(장미희 분), 완수(정진영 분)의 뒤틀려버린 관계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직접적으로 이들의 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사진을 찍을 뿐이다.

만희와 양혜, 완수의 관계는 그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전형적인 삼각관계다. 영화 해외 배급사의 대표 양혜 밑에서 일하던 만희는 영화감독 완수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완수와 양혜는 오랜 연인 관계. 만희와 완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 양혜는 칸 영화제 출장 도중 만희에게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 둘 것을 종용한다. 영화는 이런 세 명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클레어가 등장한다. 이는 마치 그 상황 그 자체를 관망하듯 바라보는 홍상수 감독의 시선(카메라의 앵글)과 동일하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기 전과 달라진다”는 클레어의 말처럼 단조로운 멜로드라마는 홍상수 감독의 앵글에 담기며 변화한다. 사진을 찍는 것과 영화를 찍는 것. 홍상수 감독은 담담한 어조로 이 두 행위가 동의의 성질을 띤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사진='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그간의 작품들에서 자전적 형식의 이야기를 많이 취해왔던 홍상수 감독은 이번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도 본인의 이야기와 닮아있는 서사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에 몇몇 장면들은 연인 김민희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넌 너무 예뻐”라고 말하는 완수에게서 얼핏 홍상수 감독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도. 클레어가 사진을 찍는 행위에 영화를 찍는 자신의 입장을 투영시키는 것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극 중 그려지는 만희의 불안함은 김민희 자신에게도 투영된다. 더불어 완수의 심리적 고통스러움 역시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허나 그렇게만 감정의 폭을 축소시키기에는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너무 아름답다.

69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클레어의 카메라’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해변 도시 칸의 풍경은 아름답고, 거리는 어디를 비춰도 회화 같다. 여기에 엉뚱하게 흘러가는 서사까지. ‘클레어의 카메라’는 현실적인 관계와 자아, 관념에 대해 얘기하며 한 편의 꿈을 꾼 듯 한 느낌을 전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클레어의 카메라’는 더 뚜렷하게 관계라는 피사체를 바라보게 만든다. 어떤 관계가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인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라는 클레어의 말처럼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 홍상수 감독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천천히 다시’ 풀어낸다. 오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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