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미지 기자] “인간 김해숙·배우 김해숙 모두 버려야겠다고 생각” 매 작품마다 주어진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기로 알려진 ‘성실함의 대명사’ 배우 김해숙이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서는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연기로 표현하려는 자체가 오만인 것 같아 아예 자신의 모든 것을 놓고 그 자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김해숙 개인적으로는 계속 삼켜야만 했던 감정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깊은 연기 내공으로 현재진행형 역사를 스크린에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POP과 만난 김해숙은 캐릭터의 감정에만 오로지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위안부 소재 작품은 과거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젊은 배우들이 연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나에게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처음에 제안 받고 묘한 감정이 들다가 두렵기도 했다. 이야기로만 듣던 걸 직접 접하니 부담감이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무조건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어 “같은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삶부터 시작한다는 게 참 신선했다. 또 관부재판이라는 한 번도 몰랐던 역사가 있었다는 게 굉장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더 많은 분들이 관부재판과 이분들의 삶을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연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공개했다.
김해숙은 극중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며 일본에 당당히 맞서는 할머니 ‘배정길’ 역을 맡았다. 어떤 인물인지 분석하기보단 감정이 어떨까에만 집중했단다. “이야기로만 듣던 걸 막상 연기해야 하는데 개개인의 사연이 다르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또 다른 자신만의 아픔이 있다. 다른 걸 참고한다면 오히려 작품에 몰입하는데 방해될까봐 보지 않고 시나리오만 열심히 봤다. 또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분의 감정이 어떨까에 감정을 집중했다.”
최대한 감정을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접근하면 할수록 점점 알 수 없는, 묘한 경험을 했다는 김해숙. 이에 배우로서의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마다 추구하는 연기론이 다른데 나 같은 경우는 원래 내 캐릭터에 최대한 다가가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면 감정이 어떨 것이라고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감정이 뭔지 혼란스러웠다. 인간 김해숙, 배우 김해숙 모두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픔을 감히 누가 상상할 수 있겠나. 내가 어떻게 한다는 건 배우로서 욕심이기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낮은 자세로 시나리오만 보고 어떤 심정일지만 파악하자는 태도로 임했던 것 같다.”
후반부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위안부 할머니들이 속에 묵혀놓은 아픔을 끄집어내면서 일본에 일침을 가하기에 통쾌함도 맛볼 수 있다. 김해숙은 연기하는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줄 알았지만, 더 아팠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늘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나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아팠다.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가슴 아픈 사실이지 않나. 안 해도 되는 일인데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사람이 치부를 드러낼 때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대리 연기하면서도 더 아팠다. 간단한 슬픔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김해숙은 ‘허스토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위안부 영화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여성 영화일 수도 법정 드라마일 수도 있다고 강조해 흥미로웠다.
“우리 영화가 위안부 역사와 아픔을 다루기도 했지만, 할머님이시지만 여성으로서 재판부에 맞선 여성 영화라고 생각한다. 배우들도 여배우들 중심으로 나온다. 또 알려지지 않은 재판을 소재로 하는 만큼 법정 드라마 부분도 있다. 마냥 어둡다고 짐작하시는데, 슬프게 풀어놓은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분명 웃기는 것도 있다.”
김해숙에게 ‘허스토리’는 배우이기 전 사람으로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안겨다준 소중한 작품이다. 관객들 역시 느끼고 힘을 실어주길 당부했다.
“개인적인 명예는 진작 놓았다. 그저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다. 이 작품 하면서 배우이기 전 사람으로서 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관부재판을 나도 사실 몰랐다. 고통스럽게 살아오신 할머님들이 일부 승소이지만, 그 판결을 이끈 게 얼마나 중요한 뜻을 갖고 있는지 많은 분들이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조그마한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