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미지 기자] “부끄러버서! 내 혼자 잘 먹고 잘 산 게!” 민규동 감독이 신작 ‘허스토리’를 만든 이유다. 영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다.
민규동 감독은 10년 전 김학순 할머니를 접한 뒤 얻어맞은 듯했다. 그렇게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반대에만 부딪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관부 재판을 알게 됐다. 동남아 11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재판 소송 중이었으나, 유일하게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고 국가적 배상을 최초로 인정받았던 귀중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위안부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관부 재판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낯선 역사다. 이에 오프닝부터 관부 재판에 대한 상황을 애니메이션식으로 친절히 설명해주며 몰입을 돕는다.
‘허스토리’가 흥미로운 건 기존 위안부 소재의 영화들과 달리 과거 상황이 아닌 할머니들 개개인의 현재 삶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에 아픈 상처보단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당당한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 신파로 무겁고, 자극적인 것이 아닌 담담하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현실성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유머러스한 분위기 역시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아픔을 숨기고 눈치를 보며 살아가던 할머니들이 당당해져가면서 큰 소리를 내는 과정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법정, 성장 드라마로써의 면모 역시 있는 셈이다.
6년 간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당찬 원고단 단장 ‘문정숙’(김희애)을 중심으로 극이 흘러가는 가운데 ‘문정숙’은 처음에는 남 일로 여겼다가 점차 공감, 마음을 열어가는 인물인 만큼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끈다.
김희애의 색다른 연기 변신이 반갑다. 특유의 우아한 기품은 벗어던지고 걸크러시 신여성으로 거듭난 것. 또 짧은 헤어스타일, 체중 증량 등의 외형적인 변화는 물론 부산 사투리, 일본어 연기까지 도전했다. 할머니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김해숙을 비롯해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깊은 연기 내공의 배우들이 합류, 진정성 있는 열연을 펼치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들 각각의 법원에서의 증언은 눈시울을 붉어지게 하며 마음 속 깊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게 한다. 여기에 김선영, 김준한, 이유영 등의 활약은 극을 한층 더 풍성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는 ‘문정숙’의 힘준 대사는 위안부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여성의 인권 문제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한다.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단 위안부 소재라고 해서 지레 힘들겠지 겁 먹을 필요가 없다. 민규동 감독의 섬세한 배려가 어느 때보다 빛난다. 현재 상영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