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소재의 영역을 확장한 장르드라마들이 경향이라는 감옥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근래의 한국 드라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확실하게 과거의 경향과는 달라져있다. 우선적으로 OCN, tvN 등으로 대표되는 케이블 채널들에서 강세를 보이던 장르드라마들이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고, 점점 더 다양한 장르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들만으로 주축을 이루던 한국 드라마 시장에 큰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깊숙이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분명 장르드라마들은 많아졌으나 너무나 많은 드라마들이 한정된 장르만을 고집하고 있다. 의학과 법정, 수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협소한 소재의 장르드라마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은 장르 드라마들을 시청하는 것에 있어 다소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경향을 가져 온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면 tvN ‘시그널’과 ‘비밀의 숲’을 들 수 있다. 2016년 방송된 ‘시그널’은 그간의 수사 장르의 드라마들과는 확실하게 그 궤를 달리했다. 항상 로맨스가 끊이지 않던 강력반에는 오로지 사건들만이 끊이지 않았고, 또한 무전기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시간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설정은 꽤나 시청자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로 다가왔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드라마가 ‘시그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년, ‘비밀의 숲’이 등장했다. 이수연 작가의 첫 입봉작이었던 ‘비밀의 숲’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이 검찰 내부에 가득 찬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탄탄한 스토리로 묶어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시그널’과 ‘비밀의 숲’은 형사수사물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수사드라마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형사 수사물을 전문적으로 그려왔던 OCN은 더욱 공격적으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지상파들 또한 각종 추리드라마들을 내놓으며 시청자들을 공략했다. 허나 잎사 수사드라마 못지않은 열풍을 가진 장르도 존재했으니 바로 의학드라마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드라마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의학드라마들은 더욱 전문성 깊은 이야기로 파고 들어갔다. 과거 방송된 MBC ‘하얀거탑’은 이미 의학드라마 계의 큰 산과도 같은 존재. 장르드라마들이 강세를 얻게 되자 많은 채널들은 시청자들이 전문성 높은 드라마에도 열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하얀거탑’은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걸쳐 다시 한 번 재방송되는 영광까지도 안게 됐다.
근래 가장 각광받는 장르드라마는 법정드라마다. KBS2 ‘슈츠’, tvN ‘무법 변호사’, JTBC ‘미스 함무라비’, SBS ‘이판사판’, ‘친애하는 판사님께’ 등 당장 지난 4월부터 방송한 드라마들 중 5편이 넘는 드라마들이 법정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특히 과거 검사와 변호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던 것과 다르게 근래의 드라마들은 판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국정농단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주문이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됐던 것이 요인이었다. 대중들은 당시 헤어롤 두 개를 머리 뒤편에 매단 상태로 법원에 출근하는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모습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판사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됐다. 덕택에 많은 법정드라마들이 판사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외의 장르드라마들은 다소 찾기 힘들어졌다. 군대, 호러, 정치, 사극, 스릴러 등 수많은 장르들이 존재함에도 근래의 장르드라마들은 이러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그리되 특정 직업군에만 집중하고 있는 형세다. 이제 드라마에서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형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 드라마들은 어느 순간부터 주류 드라마 시장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드라마의 다양성을 넓히게 해준 장르의 등장 속에서 드라마들은 또 다른 감옥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시청자들의 니즈가 분명히 특정 직업군이 부각되는 장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시청자들의 선택폭을 넓히는 것도 병행되어야 하는 작업임은 틀림없다.
지난해 방송된 tvN ‘도깨비’와 올해 방송 중인 ‘미스터 션샤인’, 그리고 방송을 준비 중인 넷플릭스 ‘킹덤’까지. 가장 주목받는 작품들은 대세의 경향이 아닌 곳에서 피어오른 장르드라마였다. 대중들은 좀 더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들을 찾고 즐기려 한다. 물론, 익숙한 소재에서 색다른 장르적 묘미를 찾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JTBC ‘라이프’가 기대를 받는 이유다. 또한 KBS2 ‘너도 인간이니?’와 같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장르에서도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한정된 소재의 장르가 아닌 더 다양하고 깊숙한 장르드라마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지금의 형국에서 또 다른 웰메이드 장르드라마들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