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유진기자]이경규가 이소룡의 실제 머리카락을 보고 감격했다.
28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과몰입인생사' 첫화에서는 이경규와 함께 이소룡의 인생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규가 "제 인생을 이소룡으로 살아왔다"며 "무술을 배우기 위해 도장도 다녔다. 제가 20, 30대 때는 거의 이소룡이었다"고 주장했다.
이경규는 "이소룡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람들에게 맞고 다니는 아이였다"고 설명하며 "이소룡은 깡으로만 덤빌 게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쿵후를 배운다"고 부연했다. 영화 '엽문'의 실제 주인공이자 이소룡의 스승을 만나게 되고 이소룡은 점점 강해졌다.
아역배우 생활을 했던 이소룡에게 어느날 어머니가 미국 유학을 권유했다. 그와 동시에 홍콩에서 배우 계약 제안이 있었다. 이용진과 이지혜는 "어머니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며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이찬원은 "저는 큰 위험을 안고 가는 모험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가 있었으니 저라면 홍콩에 남아 배우 계약을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말했다.
패널들의 선택으로 이소룡의 현실이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이소룡이 홍콩에서 배우 계약을 했다면 이소룡은 삼합회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이소룡의 실제 선택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미국에 가 식당 일을 하며 용돈을 벌고, 명문대에 입학했다. 이소룡은 미국에서도 틈틈이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졌다. 마침 이소룡이 다니던 미용실에 드라마 제작자가 다니고 있었는데 미용사가 "마술 같은 무술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 이야기가 제작자에게 매력적으로 들렸고, 그 결과 이소룡에게 드라마 캐스팅이 들어왔다.
24세 이소룡의 실제 오디션 영상이 나왔다. 이소룡은 직접 무술을 선보이며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을 본 드라마는 제작이 무산됐다. 그 제작자에게 몇 달 후 연락이 왔지만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운전기사 역할을 제안 받았다. 심지어 대사도 없고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가면을 써야 했다. 고민하던 이소룡은 승낙했고, 그가 찍은 드라마는 '그린 호넷'이었다.
이재윤이 스튜디오에 실제 이소룡의 머리카락이 담긴 애장품을 가져왔다. 이경규는 "내가 살아 생전 이소룡의 실제 머리카락을 보게 될 줄이야. 방송 끝나고 미용실 가서 삭발하겠다"며 감격했다.
이소룡은 할리우드에서 각종 차별을 온몸으로 겪으며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먼저 본인이 주연을 맡은 쿵후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제작자는 이소룡의 아이디어만 가져가고 주연은 백인 배우에게 줬다.
배우로 살아남기 힘든 시점이 됐다. 미국에 남거나, 홍콩으로 돌아가는 선택 중 한 가지 선택을 해야했다. 이용진, 오해원은 홍콩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고, 이재윤, 이지혜, 이찬원은 미국에 계속 남겠다고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이소룡이 미국에 남았다면 이소룡이 '종합격투기 창시자'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홍금보와 이소룡이 출연한 영화 '용쟁호투'를 보면 현대의 종합격투기와 똑같다"며 "이소룡이 살아있었다면 본인이 직접 하나의 리그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소룡의 실제 선택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간 이소룡은 팬들 덕분에 액션 영화를 홍콩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액션 영화가 아닌, 맨몸 액션 영화를 선보였다. '당산대형'을 시작으로 이소룡의 시대가 펼쳐졌다. '정무문'의 엔딩은 이소룡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주연인 자신이 악역을 처단하고 스스로 자백해 죽임 당하는 장면이었다. 이경규는 자신이 만든 작품 '복수혈전'을 언급하며 "나랑 철학이 통한다.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만들고 보니 철학이 같더라"고 밝혔다.
홍콩에서 인기를 얻던 이소룡은 할리우드를 꿈꾸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홍콩의 영화 제작 환경이 열악해 세 번째 영화부터는 이소룡이 직접 감독, 제작, 주연을 맡았다. 이때 외국인 배우를 쓸지 동양인 배우를 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새로운 방식과 익숙한 방식 중 선택해야 했다. 이찬원, 이지혜, 오해원은 외국인 배우를 쓰겠다고 했고, 이용진, 이재윤은 동양인 배우를 쓰겠다고 했다. 이소룡의 실제 선택은 외국인 배우를 쓰는 것이었다.
흥행에 성공한 이소룡에게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이 왔다. 할리우드에서 맡게 된 첫 주연작은 '용쟁호투'였다. 그토록 기대했던 할리우드 데뷔작을 앞두고 이소룡은 '용쟁호투' 개봉 6일 전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뇌부종이었다. 그때 이소룡의 나이는 32살이었다.
이경규는 "물처럼 유연하게 살고자 했다. 홍콩가면 홍콩에서. 미국가면 미국에서. 때에 맞춰 살았다. 이소룡을 물이 된 파이터로 기억하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찬원이 "이경규에게 이소룡이란?"이라고 물었다. 이경규는 "저에겐 꿈이었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