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 = 이상범 기자]‘싱가포르 국부’ 리콴유(李光耀·91) 전 싱가포르 총리가 타계하면서 전세계 시민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23일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이나 싱가포르 현 총리인 리셴룽(李顯龍·63)은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앞서 리 전 총리는 지난 200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말초신경 장애, 뇌허혈 발작 등 각종 질병을 앓아왔으며 지난달 5일 심한 폐렴으로 입원, 그동안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타계 소식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또한 성명을 통해 “싱가포르가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다. 싱가포르의 국부인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에 누리꾼들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안타깝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참 대단하신 분이었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리콴유 전 총리는 영국 식민통치 시기인 1923년 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법학과에서 유학했고, 고국으로 돌아와 노동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화교와 노동계를 규합해 1954년 인민행동당을 출범시켰고, 창당 사무총장을 거쳐 초대 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됐다.
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이어,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 싱가포르 주정부의 총리를 역임했고, 1965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후 1990년까지 26년, 자치정부 시절까지 포함하면 31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인구 300만의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용으로 일으켜 세웠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는 리 전 총리가 퇴임한 1990년에 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5만 6천 달러로 넘기면서 아시아 1위의 부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다소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의 아들인 리센룽이 총리에 오른 것을 두고 권력 세습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이자,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존경 받는 인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리 전 총리의 유언은 자신이 살던 집을 허물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집이 성지로 지정돼 이웃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