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최현호 기자]배우 김규리가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에 출연해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했다. 영화 ‘하류인생’ 이후 임 감독과는 두 번째다. 역할 뒤에 가려진 김규리의 ‘연기인생’은 이를 악물고 달린 시간이었다. 특히 임권택 감독과의 작업인 만큼 더욱 기를 쓰고 연기했다.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김호정 분)와 젊은 여자 추은주(김규리 분) 사이에 놓인 한 남자 오상무(안성기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김규리는 추은주 역을 맡아 오상무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직원의 모습을 연기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신작이라는 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공개된 결과 해외영화제에서 계속해서 초청을 받았고,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국민배우 안성기와 투병연기를 펼친 김호정 외에도 임권택 감독과 두 번째로 만난 김규리 역시 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어찌 보면 영화에서 상징적이며 관념적인 젊음과 ‘미(美)’의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부담감이 클 수도 있었다.
“‘하류인생’ 때 촬영장에 계속 붙어있었어요. 감독님의 지시를 철썩 같이 알아듣고 무조건 연기를 해내야했죠. 그 당시 그렇게 열심히 하는 자세만으로 예쁨을 받았던 것 같아요. 또래 배우들이 질투하기도 했죠.(웃음) 이번에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어요. 감독님의 시원한 OK사인을 받고 싶었죠. 그렇다고 저를 더 드러내고 애쓰지는 않았어요. 역할상 스태프들이 예쁘게 만들어주시려고 노력해주셨죠.”
원작 소설은 물론 영화 자체가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만큼 다른 배우들에 비해 어린 만큼 김규리는 더욱 깊이 있게 이야기를 살펴봐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 가운데서 추은주는 물론 오상무 역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젊은 추은주에 눈길이 가는 오상무의 입장도 이해해나갈 수 있었다.
“오상무는 숨길 수 밖에 없는 전립성비대증을 앓고 몸이 고장 났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이고 완벽하지만 아내는 죽음으로 가는 상황이죠.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추은주가 정말 매력적이라기보다는 봄에 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고 꽃봉오리를 보면서 ‘저 녀석 이제 피는구나’ 생각하잖아요. 상반된 생명력인 ‘젊음’을 가진 추은주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거예요. 그런 것에서 오상무가 위로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김훈 작가의 ‘화장’도 그렇고 시나리오에서도 오상무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해가 잘된 거죠.”
오상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오상무의 아내를 통해 젊은 추은주와의 연속성을 발견했다. 한 여자의 일생을 ‘화장’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추은주 역할을 한 김규리는 젊음을 표현하는 추은주 역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 여자의 인생이 추은주로 시작해 아내로 끝나면 어떨지 생각했어요. 삶이라는 것은 한순간에만 머물지 않잖아요. 영화는 드라마틱한 순간만 나오지만 아내를 보면서 ‘내가 나중에 결혼하면 남자가 다른 여자 품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 ‘어떻게 놔줘야할까’, ‘아름다운 여자이고 싶은데 얼마나 아플까’라는 마음으로 추은주와 아내를 한 여자의 인생으로 느꼈어요.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드레스에 풀메이크업을 했는데 눈물을 흘리고 말아서 급히 닦아내야했죠.(웃음)”
이렇게 깊이있게 역할을 파고 들고 추은주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냈지만 사실 김규리가 맡은 추은주의 비중은 원래 그렇게 크지 않았다.
“실제 시나리오 받았을 때 김훈 작가님 소설도 그렇고 추은주는 짧게 나와요. 소설에선 두 장면이에요. 시나리오 분량도 많지 않아서 아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근데 1월 1일 첫 촬영인데 저를 부르더라고요. ‘왜 나를 부르지’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저를 많이 부르더라고요. ‘왜 나를 자주 부르지’라면서 ‘어떻게 잡으려고 그러시지’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은 예쁘게 그리기 위해 스태프들이 공을 많이 들이셨어요. 추은주의 에너지를 현장에서 초반부터 잡아서 예민한 아내 역까지 깊이 들어가게 하는 워밍업한 거죠.”
그동안 김규리는 무겁거나 남들보다 강해 보이는 여성을 연기해왔다. 어느덧 여배우로서의 이름을 내놓고 연기력을 쌓아온 김규리지만 ‘화장’을 통해 스스로 뒤돌아본게 많다. 그는 연기에 대해 나름 자신감도 가져왔지만 안성기, 김호정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숙연해지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아가 연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작품이 들어오는데서 선택했고 연기를 정말 하고 싶었지만 제약이 많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숨을 쉬고 싶었죠. 주어진데서 정말 최선을 다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되는 안 되든 전력 질주했어요. 사실 성취감이 없어서 지쳐있는 상황이에요. 요즘 들어오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보면 그전에 했던 것만 고스란히 들어와요. 재벌가 상속녀나 센 여자, 혹은 꾸미는 여자들만 들어오죠. 그런 역할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2002년 안판석 감독님의 ‘현정아 사랑해’라는 드라마에서는 화장도 안하고 민낯의 제가 편하게 드러났어요. 그런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그동안 이를 꽉 물고 산 것 같네요.”
김규리는 안성기처럼 주름 하나도 멋있다면서 예쁘게 늙는 배우를 꿈꿨다. 나아가 정신적적으로도 잘 유지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이다. 임권택 감독을 만나 비로소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게 된 김규리. 다시 한 번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열정을 쏟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앞으로 그가 어떤 여배우로 자리매김할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송재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