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최현호 기자]‘칸의 여왕’이라는 이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 전도연.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으로 네 번째 칸에 입성한 그가 영화 속 무시무시한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빳빳이 드는 여성의 삶을 그려냈다. 거친 삶 속에서 사랑에 대한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여자 김혜경은 전도연이 아니면 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전도연은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무뢰한’과 주인공 김혜경을 만나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떻게 연기를 해나갔는지 헤럴드POP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 두 남녀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전도연과 김남길의 만남으로 그려낸 작품. 극중 전도연은 형사 정재곤(김남길 분)이 추적하는 살인범 박준길(박성웅 분)의 연인이자 술집 여자 김혜경 역을 맡았다.
김혜경은 과거 텐프로 출신의 잘나가는 여성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이를 먹고 세월에 이끌려 술집 마담이 된 인물이다. 전도연은 옆 라인이 절개된 스커트, 혹은 화사한 원피스 차림에 화장기가 남아 있는 얼굴로 새벽거리를 거닐며 집으로 돌아오는 김혜경의 삶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는 소통을 못하는 무뢰한 남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정재곤은 김혜경을 통해 박준길을 잡아야하고, 박준길 역시 나름대로 김혜경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여자에 대해서 모르시고, 그게 정재곤 캐릭터에 묻어나서 ‘정재곤이 여자를 모른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화 속에 모여 있는 무뢰한 사람들은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로 보였어요. 행동적으로 거칠게 보이는데, 이게 누군가에게는 무뢰한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통을 못한다고 해서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죠.”
이런 무뢰한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 혜경도 누군가에게 무뢰한일 수 있을까. 과연 김혜경은 이들 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혜경도 재곤 혹은 누군가에게 충분히 무뢰한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혜경이 굉장히 이용당하는 것처럼 나오기는 하지만, 혜경은 그게 이용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고 그 안에서 사랑을 찾고 싶고, 그렇게 믿고 싶었을 거 같아요. 저는 김혜경이라는 인물이 능동적으로 뭔가를 선택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수동적으로 누군가에게 선택 당해지는 삶을 산 것 같아요. 그걸 최선이라고 믿고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사실 김혜경을 둘러싼 인물 중 온전한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진다. 세상 자체가 무뢰한들의 세상이고 누군가를 이용하고 잡아먹는 세계인 것. 따라서 김혜경을 붙잡고 소유하려는 인물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게 다가온다.
“‘무뢰한’ 속 인물들이 생존본능이 강한 남자들이기도 하고, 사랑이나 평범한 것에 안주하는 사회가 아닌 것 같아요. 무뢰한들이 속한 사회는 내가 살아남는 약육강식이 강한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그 안에서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김혜경이 그들 속에서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 싶고요. 내가 살아가느냐 죽느냐의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그들이 사랑에 머물거나 김혜경으로 인해 안주하는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세상에서 김혜경은 박준길의 여자이지만, 다가오는 정재곤을 쉽게 내치지 못한다. 무뢰한의 세상에서 능동적이지 못한 그는 정재곤 만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 전도연의 설명이다. 또 그것이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수동적이던 김혜경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능동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정재곤인 것 같아요. 저는 그 둘이 사랑을 했거나 안했다는 것에서 명확히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랑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그들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물론 익숙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맞아요. 아주 쉽고 편하게 내가 아는 그런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도연은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남다른 고민을 했다. 시나리오상에서 김혜경의 약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촬영을 통해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필요해 그런 감정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더 혜경의 약한 모습이 안보인 것 같아요. 약한 모습이 꼭 보여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속에서 무뢰한처럼 보여주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빚 받으러가는 신도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긴 했는데 김혜경이 그걸 편하게 받아들일까 생각하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아서 처절하거나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감독님도 저를 믿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이런 생각으로 썼는데 이 신에서 불쌍해 보이네요. 힘들어 보이네요’라며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저를 지지해줬어요.”
이처럼 김혜경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살아있는 여인으로 만든 천하의 전도연도 촬영 중 자신의 연기에 대한 확신이 쉽게 가지 않는다.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더 나은 연기를 위해 연구하면서 인물을 표현해야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연기를 계속 모니터하면서 들춰보는 것은 아니었다.
“(촬영하면서) 저는 제가 잘하고 있고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래서 약간 감독님의 오케이(OK) 사인이 구세주 같아요. 모니터 앞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없으면 잘 안가기도 하고요. 감정이 정답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괴롭히고 의심하면서 저를 캐치하려고 해요. ‘괜찮을까’ ‘이러면 어떨까’라면서 자꾸 뭔가 연관시켜 생각하다보면 조금 더 그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게 돼요. 그게 촬영을 끝내고 다 지나고 생각하면 그렇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잘하는 건지 과한건지 의심이 들지만, 지나고 나서는 ‘그래서 더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해요. 모니터는 아주 꼼꼼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의 없는 세상과 사랑이라는 희망에 대해 무겁게 그려낸 ‘무뢰한’. 그 속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십분 발휘하며 김혜경이란 인물을 그려나간 전도연의 모습이 단연 빛난다. ‘칸의 여왕’이 쏟아 부은 노력이 과연 관객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송재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