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 서열이 존재하는 지하 세계의 숨 막히는 암투. 100억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군상의 피비린내 나는 야망. 작전과 작전이 난무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 6000만 클릭을 기록한 강형규 작가의 인기 웹툰 ‘라스트’가 드라마로 꿈틀대고 있다. 이 중 만화 속에서 걸어 나와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배우가 있다. 바로 이범수(45)다. 지하 세계를 주무르는 곽흥삼의 모습을 주름 하나까지 표현한 이범수 덕분에 ‘라스트’는 생기를 얻었다. 오는 12일 마지막까지 단 1회를 남기고 이범수를 만났다.
지난 5월부터 첫 촬영을 시작해 넉 달 가까이 달려왔다. “어느새 끝나간다”는 이범수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곽흥삼이라는 캐릭터를 사랑했다. 작별한다고 하니 시원섭섭하다”고 운을 띄었다. 캐릭터의 겹침이 없는 그답게 곽흥삼은 악을 거느리는 두목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신의 한수’에서 연기한 잔인한 절대악 살수와는 또 다른 캐릭터였다. 이범수는 곽흥삼에게 처음부터 끌렸다. ‘온에어’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등 히트 드라마를 찍었을 때 느낌처럼 대사가 입에 감겼다. 거친 액션이 주된 작품이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좋은 대본을 굳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를 떠나 스스로에게 남는 작품이 됐다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범수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살려기 위해 상처 하나까지도 신경을 썼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애드리브로 완성한 작은 몸짓부터 밥을 먹을 때 고개를 드는 각도까지 느낌을 담아 연기했다. “TV에서는 잘 살아나지 않는 연기일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시청자는 잘 모를 것 같다”며 자신 없어 했다. 이범수는 그렇게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묵묵하게 곽흥삼을 완성해갔다.
현장에서도 이범수는 틈이 없는 배우로 통한다. 카메라 각도, 서는 위치, 배우들 동선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편이다. 그만큼 캐릭터를 아꼈고 머릿속에 그린 느낌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최상의 조건이 갖춰진다는 건 배우가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이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장섰다. 지난 20여년간 그래온 것처럼. 그런 모습을 얼핏 접한 사람들은 ‘쓸데 없이 완벽하다’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이범수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저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거예요. 설령 배우를 그만 둬도요. 저도 칭찬만 받고 싶죠. ‘이범수 까다롭더라’ 이런 부정적 단어들로 표현되면 속이 상합니다. 배우가 이렇게 하는 건 완벽주의자임을 떠나 책임감 있는 연기자의 자세라고 생각하거든요. 다행히 저처럼 하나하나 챙기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스태프들이 많아요. 그 덕분에 힘을 냅니다. 저는 오늘 멋진 연기를 하기 위해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할 겁니다. 그런데 연기 이외의 시간에 느슨해진 제 모습을 보시면 놀라실 것 같은데요(웃음).” 데뷔 25년이 된 이범수의 연기가 놀라운 것은 강약 조절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매일 얼굴이 달라지는 우진 중 한 명으로 나왔다. 이범수가 연기한 우진은 등장한 21명의 우진 중 이수(한효주)에게 처음 반하는 인물이자 가장 온화한 매력을 뿜어냈다. ‘라스트’ 곽흥삼의 그늘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작품마다 확연히 다른 연기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마치 전기 파워를 켰다 끄는 것처럼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힘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범수는 단어 하나하나 조심하는 편이었다. “연기 좀 한다고 유난 떠는 거 아니냐”는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쓴다고 했다. 연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그이지만 “나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면 출연할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꾸밈 없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을 보였다.
지난 25년간 코믹부터 카리스마까지 이범수의 변신은 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큰 사랑을 받은 영화와 드라마도 꽤 된다. 그럼에도 이범수는 여전히 처음과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제게 만약 전성기가 왔다면 날마다 깨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늘 있거든요. 어떤 캐릭터든 대본이 좋다면 하고 싶습니다. 절절한 멜로도 가능해요(웃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얼마 전 연기 인생 2라운드를 시작했다. 올해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했다. 고심 끝에 테스피스 엔터테인먼트를 차려 지난 25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양성 중인 신인 배우만 해도 18명이나 된다. 연기부터 승마까지 매일 고난이도 연기 훈련을 시키고 있다. 이범수는 “배우 매니지먼트사는 왜 YG나 SM처럼 체계적인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하게 됐다. 내 목표는 하나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양성하는 것”이라며 경영 방향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자주 소통하는 배우로 거듭날 예정이다. 대기 중인 작품들이 꼬리를 잇고 있다. 올 하반기 중화권 전역에 상영될 영화 ‘메이지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으며,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블록버스터 대작 ‘인천상륙작전’에도 캐스팅 돼 소련에서 유학한 북한 엘리트 장교 역으로 나올 예정이다. 여러 작품 시나리오를 받고 고심 중에 있다.
그는 “지난날에는 독창적이고 신선한 작품 위주로 해왔는데 이제는 전략적이든 상업적이든 대중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이제부터 나의 진검승부가 시작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김은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