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사족(蛇足)이라고? 이준익의 이유있는 라스트신 ('사도' 인터뷰)

입력 2015-09-21 09: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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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최현호 기자]* 본 인터뷰는 읽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는 영조(송강호 분)와 세자 사도(유아인 분)의 갈등을 그린 비극적인 가족사다. 이 감독이 ‘사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영조와 사도, 부자간의 이야기도 있지만 나아가 그 사이에 있던 정조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조선 왕실 3대의 이야기를 다룬 ‘사도’는 흥미위주로 접근했다가는 ‘아차’ 싶을 묵직함을 선사한다. 다행히 영화는 시작부터 문제의 ‘뒤주’가 등장하고 폭발할 듯한 갈등관계가 영조와 사도 사이에 펼쳐진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와 영조의 관계가 절정에 치달은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가운데 라스트신으로는 장성한 정조(소지섭 분)의 모습을 담았다. 짧게 등장하는 소지섭의 분량이지만 그가 춤을 추는 신은 비교적 롱테이크로 화면을 채운다. 일각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사족(蛇足)’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이에 대한 질문에 돌아온 이준익 감독의 대답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을 어떻게 포기하냐”였다.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소재가 가진 속성상 재밌는 영화로 만드는 게 불손하다고 봤어요. 어쨌든 250년의 먼 이야기지만 지금도 살아남은 자끼리 죽은 사람을 회자하잖아요. 책도 내고요. 죽어도 죽은 게 아니죠. 비동시성의 동시성입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거죠. 물론 뒷부분의 그런 신에 대해 감독이 어떤 의미로 구현하지 않아도 관객이 알아가는 거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끝까지 밀어붙인 것은 정조의 관점에 대한 의미가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영화는 사도가 어떻게 영조의 기대에 벗어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폭발하면서 갈등을 겪게 되는지 포착한다. 영조는 자신의 눈에 차지 않고 엇나가기만 하는 사도가 못마땅하고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더욱 사도를 못미더워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영조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계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지만 정조의 아버지기도 하죠. 영조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가혹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왕이 되는 과정의 조건이 가혹했기 때문이죠. 그때 왕이 안됐으면 죽었다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영조가 ‘내가 죽었으면 너는 없다’라면서 가혹함으로 사도에게 말하죠. 가혹한 사람이 타인에게 너도 그래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선임에게 맞아도 후임에게 관대한 사람이 있죠. 그런 게 영조에겐 없었던 거예요. 사도는 영조에게 가혹하게 강제를 받았으나 오히려 어린 아들 정조에게는 관대했어요.”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흥미로운 사실이다. 영화에서 관객은 사도와 영조의 불꽃 튀는 대결에 시선이 뺏겨 정조를 놓칠 수 있다. 정조의 관점에서 본다면 할아버지로부터 핀잔을 받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난 아버지 사이에서 누구보다 불안감을 갖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자식에게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관대한 것이다.

“사도가 정조에게 관대한 결정적인 신이 몇 개 있죠. 사도는 영조와 숙종의 무덤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되돌려 보내졌던 상처가 있어요. 하지만 사도는 자신은 가지 못한 숙종의 무덤을 영조와 다녀온 아들 정조에게 ‘공부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는데 ‘할바마마가 좋아하셔서 그렇다’고 해요. 어린 정조가 ‘저도 그런 제가 싫다’고 하니 사도는 화살을 과녁에서 허공으로 쏘아 올리면서 ‘얼마나 떳떳하냐’고 하죠. 사도는 영조를 떳떳하게 보지 못했어요. 대리청정을 할 때 그런 모습이 나오잖아요. 영조가 탕평책을 운운하면서 신하들 눈치를 본다고 여기죠. 상대가 고백하면 화답을 해줘야하죠. 사도는 정조의 옆에 있는 어린 며느리에게 ‘아가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허락지 못해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고 하죠. 그게 어떤 심정이겠어요. 그럼에도 사도는 ‘부부란 실수를 덮어주고 사소한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고 사랑하라’고 하죠.”

그렇게 사도는 영조에게 받은 ‘상처’를 아들 영조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어쩌면 필요했을 ‘사랑’을 아들 부부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영화는 사도가 죽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정조를 선택한다. 사도는 갈등 끝에 영조를 죽이러갔다가 아버지 영조와 아들 정조가 대화하는 걸 듣고 아버지를 죽이길 포기한다.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송재원 기자

“사도가 영조를 죽이러 갔을 때 영조는 정조에게 ‘너는 어찌 왕과 왕비에게만 올리는 4배를 후궁에게 했냐’고 묻죠. 역적인거죠. 헌법을 어긴 거예요. 이때 정조가 ‘할아버지가 왕이 아니어도 백배, 천배 할 수 있다’ ‘아비의 마음을 봤다’고 하죠. 사도가 날 알아준 아들인데 내가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내가 죽는 게 아들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정조의 아버지로서 사도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여주고, 사도의 환갑날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난 날 그린 용 그림이 있는 부채로 춤을, ‘화답의 춤’을 정조가 안출 수 없단 말이죠.”

이준익 감독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회상하면서 추는 라스트신에 대해 “그걸 감독으로서 어떻게 빼겠냐”고 반문했다. 감정의 극한에서 어떤 말이나 글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몸으로 표현했고,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로 그려낸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라스트신까지 이르는 ‘사도’ 전체에 대해 여러 층으로 그려졌음을 강조했다. 영조, 사도, 정조 3대의 관점과 개별인물의 관점이 있는 것. 특히 영조와 사도의 관점을 넘어 정조까지 이르는 ‘사도’의 이야기는 결국 소지섭이 등장하는 라스트신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저 영조와 사도의 한바탕 비극으로 단순히 끝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냥 ‘비극을 재밌게 보여줬습니다’라면서 ‘킬링타임’일 수는 없잖아요. ‘킬링타임’이 좋기도 하고 나쁜 말이기도 해요. 그 시간을 죽이고 온 거죠. 재미만을 목표로 대상화해서 보는 것은 아니라고 보죠. ‘세이빙 타임’. 그 시간을 살리는 영화로 보는 게 맞다 싶어요. 영화를 봤던 시간이 살아나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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