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 준비된 배우 유재명(43)이 비상 중이다. 부산의 명문인 부산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재학 시절 우연히 접한 연극 한 편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생물 선생을 꿈꾸던 평범한 사내의 꿈이 재구성됐다. 연기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그들의 삶을 사는 것. 그 뒤로 20년간 연극에 미쳐 살았다. 무대 위에서 느끼는 희열에 중독돼 청춘을 다 바쳤다. 돈이 없어도 행복했다. 오로지 ‘연기쟁이’ 유재명으로 살았다.
유재명은 부산에서 유명했다. 직접 나선 극단에서 15년 동안 150편의 연극을 했으니 연기 좀 한다는 배우들은 그의 존재를 알았다. 연기 내공만큼이나 술과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도. 그랬던 그가 인생을 재편한 건 4년 전이다. 여느 때처럼 부산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알베르토 까뮈의 작품을 하던 중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버린 것.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찾아와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 전에도 간간이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영화 작업을 했지만 서울에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영상 작업에 돌입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단역을 시작으로 ‘자칼이 온다’ ‘관상’ ‘동창생’ ‘캐치미’ ‘황제를 위하여’ ‘터널’ ‘제보자’ ‘베테랑’ 등 각종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무대에서만 닦은 내공만 십 수 년. 영화계에서 그의 존재감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찾아온 행운 같은 역할이 바로 tvN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동룡(이동휘) 아빠 류재명이다. 영화 ‘바람’ 출연으로 신원호 PD와 인연이 닿았다. 사실 ‘응팔’에 앞서 ‘응답하라 1994’에 러브콜을 받았다. ‘응답하라 1994’에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던 정우와는 ‘바람’에 이어 조우할 뻔했다. 하지만 출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우연인 듯 다시 만난 ‘응팔’로 전성기를 열고 있다. 극 전개를 쥐락펴락하는 코믹함과 존재감으로 “이런 배우가 왜 이제야 나타났냐”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그야말로 ‘연기의 달인’ 탄생이다.
지난 28일 서울 이촌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은 24년간 무명으로 살아왔기에 요즘 같은 인기가 얼떨떨하다고 털어놨다. 유재명은 “‘응팔’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놨다. 욕심을 버리고 욕망을 채우는 작업이 왜 중요한지도 깨닫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물음표가 되어 준 작품”이라며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가난함과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끝까지 안고 가고 싶다”라는 소망을 드러냈다.
Q. ‘응팔’ 인기 비결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 생각해보니까 잘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현장에 있을 때 멤버들끼리 화합이 정말 좋아요. 시리즈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지만 다들 친화력도 좋습니다. 전작에서 만들어진 응답하라 분위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서로 끌어주니까 잘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대본을 받아보면 정말 완벽합니다. 대본을 읽으면서 그림이 연상이 되더라고요. 작가들 정말 대단합니다. 향수를 자극하는걸 이렇게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게다가 90분 드라마니 정말 대단합니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 감독님은 배우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Q. 배우들의 구멍 없는 연기도 인기에 한 몫 하는 것 같다
-정말 동일 선배를 비롯해서 다들 대단합니다. 동일 선배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같아요. 연기도 인생도 많이 아세요. 농담과 진담을 자유자재로 하는 모습이 부럽더라고요. 슛만 들어가며 어떻게 바로 돌변하는지. 특히 라미란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년 후배인데 정말 똑똑합니다.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합니다. 성균 씨는 정말 착해요. 동생같습니다.
Q. 쌍문동 우정도 빼놓을 수 없다. 연기 어떻게 보고 있나
-준열이는 정말 표현이 예술입니다. 어린 나이인데 어쩜 그렇게 연기할까요.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봅니다. 보검이는 눈을 보면 내가 남자이지만 빨려들 것 같아요. 혜리는 현장에서 보면 정말 덕선입니다. 혜리의 노력을 옆에서 봐서 압니다. 대본 리딩할 때 너무 잘해서 감독님에게 말했을 정도예요. 현장에서 보니까 더 잘하더라고요. 잠도 못 자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도 덕선이처럼 밝게 인사를 합니다. 혜리는 정말 예쁜 친구입니다. 앞으로도 배우를 했으면 좋겠다. 또 다른 작품에서 연기를 봤으면 좋겠네요.
Q. 같이 작품하고 싶은 배우는
-류승범이랑 하고 싶어요. 그 친구는 정말 대단한 배우인 것 같아요. 배두나도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Q. 내년 계획이 어떻게 되나
-영화 드라마 차기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인사드릴 것 같고요. 내년에는 서울에서 극단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연기 잘하는데 역할을 못 받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다들 힘을 합해서 좋은 작품 만들려고요. 휴식 같은 공연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김은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