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노윤정 기자] 배우 강하늘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드라마 ‘상속자들’, ‘미생’, 영화 ‘스물’, ‘쎄시봉’,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까지, 20대라는 그 싱그러운 나이 대에서 그는 청춘의 여러 모습을 표현했다. 그런 강하늘이 이번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청춘을 그려냈다.
영화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작품이다. 저예산 흑백 영화로 얼마큼 관객몰이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과 관객들의 입소문에 ‘동주’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영화는 3월 13일 오전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제작사 대표님이 이런 영화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대요. 정말 기분 좋아 하시더라고요. 많은 감독님들, 투자자님들, 배급사한테 이런 영화가 흥행이 안 될 것 같아서 무서워서 안 만드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잖아요. 이런 영화가 나와 줘서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대요. 굉장히 기분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도 들으니까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영화를 관람한 주변 사람들의 평을 묻는 말에 대한 강하늘의 답변이다. ‘동주’는 시사회 당시부터 이미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던 바, 인터뷰 내내 강하늘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다는 그에게 ‘동주’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작품을 찍고 나서 윤동주라는 분이 사람다워졌어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는데, 윤동주라는 분에 대해서 제가 만들어놓은 막연한 틀이 있었더라고요. 시는 많은 분들이 알지만 그 분의 삶은 많은 분들이 모르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마음속에서 윤동주라는 분이 거대하고 뭔가 우주 같고 심오한 이미지들로 만들어져 있던 거예요. 그런데 윤동주라는 분은 허구의 분이 아니잖아요. 한 시대를 살았던 젊은 남자로서 사랑도 하고 열등감도 느끼고, 무언가 보고 느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시만으로 나만의 틀을 만든 거예요. 그런 것들을 반성하게 하는 대본이었어요”
“이전의 윤동주 시인은 하얀 색 구름 같은 분이었어요. 뭔가 시도 한 번에 내려 적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죠. (…) 대본에 나온 것들은 윤동주 평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에요. 이 분의 실제 삶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제가 만들어놓은 틀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됐어요. 저는 이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시대적 아이콘’으로 보고 있던 거예요. 이 대본이 그래서 좋았어요. 윤동주를 제 머릿속에서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가장 큰 상처로 남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그 처절한 아픔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강하늘도 참고할 다른 작품들을 찾아볼 여유조차 없었을 정도로 부담감을 느꼈다. “사실 시에 대한 작품을 제가 잘 몰라요. ‘토탈 이클립스’랑 ‘죽은 시인의 사회’ 정도예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동주’도 그 목록에 추가되지 않을까 했더니 “그럼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민망하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속에는 정말 ‘한’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상황 안에서 왠지 모르게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윤동주 시인도 아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도 아니니까 그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순 없었겠죠. 그런데 왠지 그냥 알 것 같더라고요. 다 이해했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건방지고,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어요. (연기하면서) 그 마음을 증폭시키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윤동주 시인을 연기하면서 ‘윤동주 시인이 이 영화를 본다면…’이라는 그 마음 하나로 했어요. 전 나중에 윤동주 시인을 만나러 갈 거잖아요. 그 앞에서 욕 듣지 말자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었어요. 그래서 더 부담감도 심했고요”
강하늘은 영화 속에서 윤동주로 분해 ‘시인’이라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자신은 ‘연기’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일까’ 물으니 “제가 하고 있는 연기를 예술이라고 애기하기 애매한데…”라며 민망한 듯 말문을 열었다.
“개인적인 예술관은 있어요. 일단 예술이라는 건 관객이 있어야 하고, 보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건 봐줄 무언가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세운 기준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무언가 하나 변화를 주거나, 진화시키는 그런 목적으로 만든 작품들은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끊임없이 자아성찰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아는 화가님들은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지 않거든요. 작가들도 그렇고요. 왜냐면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정답이 없는 거잖아요. (…) 연기라는 게 왜 힘드냐면, 정답이 없는 행위인 건 다들 아는데, 관객들은 제가 하는 행위를 정답처럼 느껴야 한다는 거예요. 가끔 너무 어려워서 싫을 때도 있어요.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계속해서 자아성찰하고 반성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강하늘은 현재 가장 화제성 있는 남자 배우 중 한 명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윤동주는 죽고 나서야 그의 시가 가진 가치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예술작품에 대해서 강하늘은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기보다 운이 없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모든 사람이 주목받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그 안에서 씁쓸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겠죠. 윤동주 시인께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는 걸 끝내 보지 못하셨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사후에라도 가치를 인정받게 되어) 운이 좋았던 거죠”
강하늘의 말처럼 윤동주는 아름다운 시를 남겨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송몽규(‘동주’에서는 배우 박정민이 연기했다)는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잊어선 안 될 인물이지만,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는 결과가 좋고, 송몽규는 과정이 훌륭하다”고 표현했던 바 있다. 강하늘 역시 송몽규가 잊혀졌던 세월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제 마지막 작품이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미소 지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그 말이 곱씹어볼수록 현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강하늘. 그의 실제 ‘청춘’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20살 때의 기억을 물으니 “딱 한 가지 기억밖에 없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공연을 하나 했어요. 그 공연 자체가 6개월짜리였고, 연습기간이 3개월 정도 됐고, 오디션이 4차까지 했으니까 그걸 다 합치면 1년이 다 되거든요. 그래서 20살의 기억은 사실 그 기억밖에 없어요. 조정석 형이랑 같이 했던 그 공연. 6개월 동안 매일 형들과 만나고 하루를 연습실, 분장실에서 보냈던 그 기억이 제일 커요. (…) ‘평양성’은 공연 끝나고 나서 바로 하게 됐고요. 저는 이준익 감독님께 감사한 게 제 첫 촬영장을 정말 아름답게 꾸며주셨어요. 촬영할 당시에 감독님이 술 마시다가 저랑 광수 형한테 친구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할아버지-애기도 ‘프렌드(friend)’라고 친구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냐고 하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나요. 그래서 ‘평양성’ 끝나고도 사무실에 놀러가고, 감독님과 술도 마시고 했었어요”
시인 윤동주는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고백했다. 그리고 영화 ‘동주’에서 보여준 윤동주는 행동에 주저함이 없고 자신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된 송몽규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배우 강하늘에게 부끄러웠던 일은 무엇이 있을까. 다소 뻔할 수 있는 질문에도 잠시 고민하던 강하늘은 “그 분이 표현하고자 했던 부끄러움이 얼마나 깊은 부끄러움인지 이 질문을 들으니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며 운을 뗐다.
“저한테 있어서는 연기를 못한다고 혼났을 때, 그 당시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물론 그때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왜 그렇게 연기를 못했을까, 왜 못해서 그렇게 많이 혼이 났을까’ 자기 전에 그런 생각 가끔 생각해요. 정말 무섭게 혼났거든요. 엄청 울었어요. 죄송하다고 하고 나와서 계속 울고…”(웃음)
“질투를 느껴본 적요? 사실 이 세상에 연기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제가 가장 최근에 느꼈던 질투와 열등감의 최고봉은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이에요. 솔직히 욕하면서 봤어요.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 나도 계속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왠지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도 들고요”(웃음)
강하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연기와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의 깊이, 오랜 고찰에서 비롯된 분명한 주관에 한 번 놀라고, 칭찬에 들뜨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지만 겸손하게 전할 줄 아는 현명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배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는 강하늘. 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분명 오랜 세월이 지나서까지 기억될 ‘배우’의 모습이 아닐까.
“솔직하게 말하면 꿈이 조금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멋진 연기하는, 배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부터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연기자가 되는 길도 보이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강하늘을 추억했을 때 ‘정말 멋진 배우다’라는 이야기보다 ‘좋은 사람이지’라는 이야기를 더 먼저 듣고 싶은 마음이에요”
“‘변했지만 변질되지 않았다’, 그 마음은 항상 제가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해요. 어차피 사람은 변하잖아요. 변해야 하고,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변질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가 자신을 보지는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주변에서 정확하게 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 평가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하죠. 보통은 변질된다는 걸 못 느껴요. 내가 변질되는 걸 느끼면 그건 성공한 거예요”
(사진=서보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