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팝인터뷰①] '계춘할망' 70세 배우 윤여정을 움직인 한 마디는

입력 2016-05-10 07: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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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임지연 기자] “선생님 도회적인 이미지 소멸되셨어요”. 이 짧은 한 마디가 70세 노배우의 도전 의식을 꿈틀거리게 했다. 영화 ‘계춘할망’을 통해 푸근한 할머니로 변신을 시도한 배우 윤여정의 이야기다.

‘계춘할망’(창 감독)은 12년 만에 집에 돌아온 손녀 혜지(김고은)와 오매불망 손녀만 기다려온 계춘(윤여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동안 ‘돈의 맛’ ‘하녀’ ‘죽여주는 여자’ 등에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던 윤여정은 푸근하고 손녀 사랑이 애틋한 우리네 할머니를 연기해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헤럴드POP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임한 소감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윤여정이 처음부터 ‘계춘할망’에 끌렸던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아름답고 잔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부분이 걸렸다. 첫 번째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가 상업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였다. 두 번째는 그간 강하고 세련된 역할을 연기해온 그가 할머니 역할과 어울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윤여정의 마음을 움직인 건 ‘계춘할망’ 제작자의 “선생님, 도회적인 이미지 소멸되셨어요”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아서 봤는데, 잔잔하고 아름다운 얘기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영화가 상업 영화가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인디 영화는 못 한다는 얘기를 했죠. 인디 영화는 돈 안 준다는 얘기이지 않나(웃음). 그런데 투자자가 있다더라고요. (내가) 도시적인 이미지라 ‘할머니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배우가 많지 않나’라고 얘기했더니, 제작자가 나보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진됐다’고 하더라고요. 말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삼청동에서 만나서 얘기했는데, 계속 이미지가 소진됐다고 하더라고(웃음).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그 사람에게 고마움이 느껴졌어요. 사실,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고칠 수 있는데, 보통 안 그러잖아요. 나에게 도전을 하게 해줘서 고맙게 느껴졌죠. 이미지가 소진됐다고 하니 도전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도전에 성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한다면 그 제작자와 감독에게 고마울 것 같아요.”

영화 ‘계춘할망’을 본 관객들이라면, 스크린 속 윤여정의 모습에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할머니의 기억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윤여정 역시 영화를 촬영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증조 할머니를 떠올렸다. ‘계춘할망’은 윤여정이 증조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바치는 마음으로 촬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꾸 잘되게 하려고 잔소리도 하잖아요. 또 엄마 노릇도 처음 해보니 이래라저래라 하게 되죠. 그런데 할머니가 되면 그런 부분이 없어요. (손자 손녀가) 꾸물꾸물하는 것도 예쁘고 토하는 것도 예뻐요. 할머니의 사랑은 그만큼 무한한 것 같아요. 10살까지 같이 살던 증조할머니가 나를 그렇게 예뻐하셨어요. 왜 어른들은 음식을 씹어서 주잖아요. 나는 그런 게 너무 싫어서 질색 했었어요. 그러다 그 기억을 잊었었는데, 50대 무렵 문득 증조할머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진심으로 매일 미안한 마음으로 자기 전에 기도를 했어요. 나중에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나면 무릎을 꿇고 '내가 너무 어려서 몰랐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할머니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셨던 무한한 사랑을 표현해보자 싶었어요.”

극중 계춘은 햇빛에 피부가 그을린 모습의 제주도 해녀다. 또 어린 손녀를 잃어버린 터라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한 인물이기도 하다. 윤여정은 계춘을 더 생동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 해녀 연기는 물론 얼굴과 헤어 분장까지 감행했다.

“영화를 보고 비주얼 적인 부분은 분장을 끔찍하게 했구나 싶었어요.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 추억이 새롭더라고요. 사실 아직까지 당시 분장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을린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분장을 했었는데, 지금까지 그 영향으로 부끄러운 사람처럼 피부 빨개져요. 머리는 더 하얗게 하기 위해 순 알코올을 발랐어요. 다 부서지고, 뚝뚝 끊어져서 사람들이 ‘옥수수수염’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돌아온 상황이에요.”

수십 년 만에 다시 타이틀롤을 연기하게 된 윤여정은 영화의 제목을 바꾸는 것은 어떨지 여러 차례 제안했다. 부담감 때문이었다.

“타이틀롤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사실 ‘계춘할망’ 제목을 바꾸라고 많이 이야기했어요. 어렸을 때는 주인공인 게 좋았지만, 모든 일이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이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나에게 짐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제목을 바꾸라고 여러 번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결국 ‘계춘할망’으로 가더라고요(웃음)”

70세 배우는 약 1년 전 제주도에서 머물며 어려운 해녀 연기도 번거로운 분장도 이겨내며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그 결과물인 '계춘할망'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오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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