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팝업리뷰]'3일간의 비' 뒤늦게 밀려오는 여운

입력 2017-08-30 18: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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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김은정 기자] 파고 들수록 흥미롭고 넓어지는 이야기와 명품 배우들의 황홀한 연기가 매력적.

지난 7월 11일부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3일간의 비'가 오는 9월 10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3일간의 비'는 1995년과 1960년대의 다른 두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이번 국내 초연의 연출은 배우 오만석이 맡았다.

2003 토니상 수상자인 미국의 유명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의 작품인 '3일간의 비'는 줄리아 로버츠, 콜린퍼스, 제임스 맥어보이 등 해외의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잇달아 출연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리차드 그린버그 특유의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를 통해 인물 간의 섬세한 감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특히 무대 위 세 배우는 낸과 라이나, 워커와 네드, 핍과 테오의 현재와 과거의 캐릭터를 모두 1인 2역으로 소화하며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그린다.

'3일간의 비'는 워커의 설명으로 시작된다. "말을 더듬는 아빠, 말이 많은 엄마,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빠의 친구 테오." 관객이 있는 듯 없는 듯 순간 집중도를 끌어올린 시작점은 앞으로 펼쳐지는 극 흐름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워커와 마주한 누나 낸은 무서운 기세로 동생을 대한다. 사설탐정을 고용해도 찾을 수 없었던 워커에게 어디로 잠수를 탄던거냐며 화를 내던 낸 또한 혼자 무대 위에 남겨지자 독백을 시작한다.

워커와 낸이 과거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테오가 살았던 집에 모이게 된 것은 아버지의 유산 상속을 위해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테오의 아들 핍과 만나 네드의 유언을 듣기로 한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흥분하여 낸에게 아버지의 일기를 읽어주는 워커. 그 내용은 짧았다. 워커의 표현으로 '시를 쓰듯' 쓰여진 일기장은 가장 가까웠던 친구인 테오의 죽음마저 '테오가 죽어간다' '테오가 죽었다'처럼 사실적이고 단조롭게 남아있다. 그중 가장 첫 일기는 '1960년 4월 3일에서 5일, 3일간 비'라는 메모다. 일기예보와 다를 바 없는 이 짧은 글에 대해 워커는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느낌을 적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네드의 유언을 듣고 온 낸과 워커, 그리고 핍은 다시 그 집에 모인다. 워커는 핍에게 잔뜩 화가 난 상태고, 핍은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억울한 모습이다. 핍은 워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낸에게"'오이디푸스'는 왜 나온 거지? 쟤(워커)가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유로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 왜?"라고 말하며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워커가 무작정 잠수를 타버렸을 때,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아파트를 수습한 사람은 핍. 핍은 워커에게 "니가 날 좋아하는 것 안다"면서 솔직하게 마음을 부딪친다. 그러다가 18살 때 낸과 사귄 이야기를 스스로 폭로해 다시 한번 워커와 멀어진다.

낸은 워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1년 만에 처음 연락 와서 믿기 힘들었던 것은 워커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집을 갖게 하면 집이 그 아이를 보살필 거라 생각했다. 그럼 나는 자유가 되는 거다." 그 말을 듣고 핍은 거리낌 없이 "워커에게 집을 주겠다"고 결심한다.

1막의 내용은 워커, 낸, 핍의 이야기로 정리된다. 워커와 낸은 네드-라이나 부부의 아이들이고, 핍은 테오의 아들이다. 동업자였던 네드와 테오의 사이처럼, 아이들 또한 가까운 사이로 자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2막은 이 작품을 더욱 깊고 심오하게 만든다. 특이한 것은 1막과 2막 사이에 인터미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변신할 시간과 무대 세팅의 시간은 필요하다. 약 1~2분 정도 흐르는 이 시간 동안 관객들 앞에는 날것의 변화가 일어난다. 암전된 무대에는 집 모양을 따라 조명이 켜진다. 선으로 나타난 집 모양은 아늑하면서도 위태롭다. 그 밑으로 세트를 바꾸는 스태프들이 지나다닌다. 상자를 들고 무대를 정리하고 재배치하는 모습은 낯설지만 긴장감 넘치게 흘러온 1막을 벗어나 과거로 돌아간 2막에 적응할 시간을 부여한다.

2막은 세 사람의 부모인 라이나, 네드, 테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각 배우가 1인 2역을 소화하는데, 낸은 라이나, 워커는 네드, 핍은 테오로 분한다. 배우들의 변신한 모습도 하나의 매력이지만, 이들의 1인 2역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의 이들이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과거를 통해 투영하게 된다. 테오는 자유분방한 영혼이다. 게다가 건축 디자인에 대한 감각도 좋아서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 테오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은 네드다. 말 더듬이인 네드는 말이 적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거리낌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한다. 테오의 여자친구인 라이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매번 테오와 티격태격 부딪히지만 라이나는 테오의 마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테오와 라이나는 사소한 것으로 싸운다. 그럼에도 서로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난 뒤 라이나는 네드를 불러 편할 대로 이야기를 한다. 라이나는 "내가 문제다. 너무 감정적이라 (테오의)등을 돌리게 만든다"고 고민을 털어놓고, 네드는 "(테오는)거기서 매력을 느낀다. 재미있어한다"며 라이나를 다독인다. 네드 부모님의 집을 설계하던 테오에게 네드는 '표절작'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천재'라고 단정 짓는 네드 때문에 더욱 궁지에 몰린 테오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훌쩍 떠난다.

테오의 빈자리는 라이나에게도 큰 구멍이었다. '테오가 없어서는 안 되는 두 사람' 네드와 라이나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 네드는 아무 말이나 해보라는 라이나에게 "'원죄'가 있다고 믿느냐"고 묻는다. 라이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라면서 흥미를 보인다. 네드는 '원죄'를 "이상한 개념이자 생각"이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이 함께한 3일동안 밖에는 비가 내렸고, 연락도 없이 테오가 돌아왔다. 테오는 네드와 라이나가 함께 침대에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긴말 없이 테오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내가 모두를 실망시키고 상처를 줬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한 뒤 떠난다.

네드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라이나는 네드를 안심시키며 "넌 너무 도덕적 관념에 잡혀있어. 테오는 세상에 적응을 잘하니까 괜찮을 거야. 네가 날 살렸어"라고 말한다. 이어 스스로 뮤즈가 되기로 한 라이나는 네드 부모님의 집을 직접 디자인하도록 네드를 밀어붙인다. 네드는 말한다 "이건 실수야, 첫 번째 실수."

미국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던 작품답게 '3일간의 비'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보여줘야 하는 서사가 많다 보니 작품 속에 깔아 둔 요소를 다 챙기지 못해 빈틈이 많이 생긴 것은 아쉽다. 갑작스럽게 끝을 맺은 엔딩은 관객이 여운을 느끼게 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관객들이 '3일간의 비'를 보고 저마다의 해석을 공유하여 다양한 여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공연을 본 뒤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였지만, 역시 작품이 전하는 바가 뚜렷하지 못해 쓸려가버리는 것은 안타깝다.

감성적 작품에 입혀진 메인테마 이루마의 '회상-Reminiscent'은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감성적인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 피아니스트는 극 중 배우와 호흡도 맞추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3일간의 비'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다. 무대 위 세 배우는 모두 1인 2역을 소화하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및 세 인물을 투영하는 세대 간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배우의 매력까지도 다채롭게 만든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망원동 브라더스' 이후 1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윤박의 연기가 돋보였다. 윤박이 연기한 네드와 워커는 캐릭터가 다른 인물이다. 그만큼 색깔이 확실히 달라져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이기에 연기의 무게감도 중요했는데, 윤박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네드와 워커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윤박의 네드는 말 더듬이로 유약해 보이면서도 자신만의 신념이나 의견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네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워커와 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극 중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장면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연극 무대인 이윤지(낸-라이나 역)는 TV드라마와는 다른 연기를 펼쳤다. 연기력이 무르익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인물을 그려냈다. '믿고 보는 배우' 이명행(핍-테오 역)은 딕션과 성량에서 제대로 차별성을 보여주며 완벽한 무대를 선사했다. 그는 연극 무대의 베테랑답게 관객이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드러냈고, 들쑥날쑥한 감정마저 넓게 표현하며 공연장을 압도했다.

오는 9월 1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되는 연극 '3일간의 비'에는 네드·워커 역 최재웅, 윤박, 라이나·낸 역 최유송, 이윤지, 테오·핍 역 이명행, 서현우가 출연한다.

(사진 제공=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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