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역사 왜곡 논란 격화
‘자작극 해석’에 비판 폭주..1점 평점부터 주연 배우 책임론까지
허진호 감독 “가정일 뿐..단순히 왜곡이라고 프레임 씌워”
[헤럴드뮤즈=이미지 기자]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는 당시 수사 결과와 다른 해석을 담으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암살자(들)’ 제작진은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여기에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경찰청에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헤럴드뮤즈에 “‘암살자(들)’은 역사적으로 있었던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허진호 감독이 직접 생각하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며 “이 역시 자유로운 창작의 영역 중 하나다. 다만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영화는 영화로 이야기해야 한다. 완성도가 아닌 감정적으로 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며 “잘못된 이야기를 연출했을 때는 감독과 제작자가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한 게 아니라 하나의 가설을 갖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문화적인 자유를 훼손시키는 거다. 특히 영화를 보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자작극 해석’ 두고 엇갈린 시선..제작진 해명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자(들)’은 11일째 200만 고지를 넘어섰다.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네이버 네티즌 평점은 2.7점에 그치고 있으며, 1점대 평가가 잇따르는 등 작품을 둘러싼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수사 당국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포섭돼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문세광은 같은 해 사형을 선고받고 형이 집행됐다.
‘암살자(들)’은 이 역사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에서 제기된 의혹을 추적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사건을 기획했다는 이른바 ‘자작극 해석’의 여지를 담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의사 홍혜걸은 “‘암살자(들)’은 불편하다. 아직 유족도 살아있는데 억지 음모론으로 인구 절반이 존경 내지 인정하는 고인을 모독하는 게 옳은가”라며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쉽다. 자기 진영엔 절대 허용되지 않을 각본도 반대 진영으로 오면 예술이 추구하는 허구라며 찬양한다. 내로남불이다”라고 자기 생각을 전했다.
‘뉴스타파’ 최승호 PD 역시 “문세광의 저격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신속한 재판과 사형으로 이어졌기에 남아 있는 증거들에서 여러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박정희 정권이 영부인을 죽인 범인이라는 의심을 하다니.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암살자(들)’의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은 “박정희가 육영수 피격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라며 “이렇게 폄하될 줄은 몰랐었다. 다 가정으로 많이 가져간 건데 이것을 단순히 왜곡이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어떤 커다란 목적이 있어서 이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라고 호소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역사적 비극을 왜곡하는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라며 “영화 제작사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데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해당 영화 상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결국 ‘암살자(들)’ 제작진은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사건과 관련하여 작성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다”라며 “제작진은 공개된 기록과 자료, 서적, 다큐멘터리 등을 폭넓게 조사하고, 실제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하되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 작품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며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제작진은 그러한 의견을 존중한다”라면서도 “다만 작품 고유의 창작 의도와 성격을 넘어 특정한 정치적 목적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님을 말씀드린다.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주연 배우 불매→중국 자본설까지
문제는 본 논란이 주연 배우들을 향한 불매 움직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 중인 버거킹, 광동제약 광고 영상에는 비판 댓글이 쏟아졌고, 결국 댓글 기능이 차단됐다. 일각에서는 광고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공개된 ‘암살자(들)’ 리뷰 영상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고, 결국 해당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영화 유튜버 지무비도 관련 콘텐츠를 삭제했다.
VIP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를 관람하고 평을 남긴 배우 김고은, 박병은, 정우 등의 SNS에도 비판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에 중국 자본이 유입돼 영화가 제작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러자 제작사 측은 “당사 및 ‘암살자(들)’의 제작과 투자 과정에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은 전혀 없다”라며 “‘암살자(들)’은 국내 제작진과 창작자들의 주도 아래 국내 자본으로 독립적으로 기획·제작된 작품이다”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최근 작품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과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다양한 의견은 존중한다”라면서도 “다만 투자 및 제작 자본에 관한 사항은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인 만큼, 사실과 다른 정보가 더 이상 확대·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역사 왜곡 여부에 대한 찬반 공방을 넘어 출연 배우를 향한 불매 움직임과 평론가·유튜버를 향한 비난, 중국 자본 유입설까지 번지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역사 왜곡 논란 여파 속 ‘암살자(들)’ 팀의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일정도 취소됐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배우는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라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배우들에게 그러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영화 안에서 짚어나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작진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창작의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imag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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