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체험형 이머시브 공연 ‘인간전시: 공’ 리뷰
글로벌 겨냥 프로젝트 움트 ‘인간전시’ 여섯번째 시리즈
[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사락, 낯선 촉감의 백색 천을 젖히고 들어선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곳은 전시장도, 공연장도 아닌 어느 ‘태초의 세계’였다.
무대 위엔 그 어떤 대사도, 거창한 서사도 없다. 정적을 깨는 건 오직 무용수의 정직한 발걸음뿐. 조명의 결을 따라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날카로운 마찰음이 덧입혀진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이 아득해지고, 오로지 이 공간의 호흡만이 선명한 실재가 된다.
“부족한 채로도 충분합니다”
비워내야 비로소 채워진다는 역설. 60분간의 기묘한 항해 끝에 마주한 건 다름 아닌 인간 스스로의 불완전함이었다. 그렇게 ‘인간전시: 공(空)’이 설계한 고요한 무(無)의 세계로 기꺼이 관객들은 침잠했다.
“불완전한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완전한 메시지” 空이 전하는 진짜 의미
이곳에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선 같은 건 없다. 관객이 곧 작품의 일부가 되는 ‘이머시브’ 공연. 낯선 형식이 주는 긴장감을 읽었는지, 공연 시작 전 제작진이 나지막이 당부를 건넨다. 무용수가 다가와 손을 내밀거나 눈을 맞춰도 당황하지 말 것.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그 순간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겨달라는 요청이다.
‘태초의 언어’인 몸짓만으로 소통하는 무용 공연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선택받은 35명의 관객은 비로소 문턱을 넘는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음은 마법처럼 멀어지고, 안과 밖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다.
공연의 중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의적 의미를 품은 ‘공(空)’이다. 무용수와 관객 사이를 유영하던 투명한 공이 어느덧 손바닥 위에 놓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끄러운 원형이 아니다. 곳곳에 실금이 가 있거나 일그러진 자국들. 낯선 질감이 손끝에 닿는 순간,오브제는 비로소 말을 걸어온다.
작품을 기획한 김비안 예술감독은 공연이 끝난 후 헤럴드뮤즈와의 인터뷰에서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건 의도적으로 설계된 ‘완전하지 않은 공’”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아도 되는데 완전해지려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공에 담긴 의미를 함께 덧붙였다.
이어 김비안 감독은 “깨져있는 건 원래의 모습”이라며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힘들게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덧붙여 말했다. 결국 “불완전한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완전한 메시지”라는 의미에서다.
공뿐만 아니라 ‘방향’에 대해서도 깊은 메시지를 다룬다. 공연에서는 다섯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데, 언제 어디서 등장한다는 말도 없이 이들은 각각의 출발선에서 나타나 자유로이 다닌다. 오히려 이들이 한데 모여 펼치는 군무가 되레 적을 정도.
이러한 구성에도 의미가 담겼다. 김비안 감독은 “인생에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며 “정해진 방향이 없기에 각자만의 방향이 있고, 그에 따라 각자가 보이는 대로가 정답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소 낯선 형태의 공연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방향과 움직임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관객들은 무용수와 하나가 되어 몰입하는 경험을 하고, 모두를 하나로 ‘잇는’ 밧줄을 매개로 거대한 원이 만들어진다.
공연의 끝자락, 시작과 동시에 닫혔던 흰 천이 서서히 걷힌다. 태초의 정적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의 빛과 마주하는 찰나,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꼭 두 눈 가득히 담아두길 권한다. 그 찰나의 시각적 경이로움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잔상으로 남을 테니까.
정해진 방향도, 경계도 없는 공연…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투영한 ‘이머시브 시어터’
대사 없이 오롯이 움직임으로만 이뤄진 공연인 무언(無言)극. 여기서 나아가 관객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하는 관객 참여형, 몰입형 공연을 ‘이머시브 시어터’라고 한다.
지난해 국내에 성공 착륙한 뉴욕 맨하탄발 공연 <슬립노모어>도 이에 해당한다. <슬립노모어>의 바렛 감독은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깨어 있는 건가 잠든 건가, 이것이 꿈인 건가 하는 경계에 있는 그 모호하면서도 스릴 넘치고 마법적인 느낌을 공연을 통해 경험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머시브 공연인 ‘인간전시: 공’ 또한 같은 의미를 전한다. 사회가 정한 이상의 틀에 맞춰 맞춰진 방향에 따르기보다, 자신을 오롯이 마주한 이후 내딛는 발걸음대로 움직이는 게 진정한 가치라고.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 국내 이머시브 공연 ‘인간전시: 공’은 현재 입소문을 타고 매진을 기록 중이다.
벌써 오는 7–8월 공연 예매를 이어가고 있는 해당 공연은 프로젝트 움트의 김비안 예술감독을 필두로 다섯명의 열정 가득한 무용수와 양승관, 성혜경 안무가 그리고 최용수 연출, 김형민 음악 감독이 힘을 합쳐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al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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